산으로 간 배 첫날이었다. 장소는 영등포 문화라운지영. 찾아오기 쉬운 곳은 아니었다. 건물 내부가 미로처럼 복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심각한 길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평소보다는 잘 찾아온 편이었다.
공간은 깔끔했다. 올해 4월엔가 개관한 곳이라고 한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자꾸 불평하셨다. 이렇게 매끄러운 공간은 본인의 감성과 안 맞으시다면서. 나에게도 썩 편안한 공간은 아니었다. 일단 의자가 오래 앉아있기 불편한 디자인이었다. 이게 소파인지 의자인지 모르겠는 생김새였는데, 푹신하긴 했지만 어쩐지 불편했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3시간 정도 앉아있으면 어디든 불편한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첫날은 그냥 자기소개하는 날 같은 거였다. 김월식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을 시작하셨다. 나는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얘기들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월식 선생님에 의하면, 예술가와 무당은 유사한 존재이다. ‘안 보이는 것을 먼저 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몇 번 들어봤던 거라서 수첩에 적어두지는 않았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늘상 하시는 한 줄의 자기소개를 말씀해 주셨다. “안녕하세요. 아빠, 시민, 작가 김월식입니다.” (‘아빠, 시민, 무당 김월식’이라고 소개하셨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소개를 만들게 된 비하인드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특히 두 번째 키워드인 ‘시민’에 대해서. 누가 들어도 ‘아빠’나 ‘작가’는 대충 납득이 가는 소개인데(애를 낳았으니까 아빠일 것이고, 작업을 하니까 작가겠지,라고 다들 생각할 테니), 본인을 ‘시민’이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은 잘 없으니까. 월식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삶에서 왜 ‘시민’이라는 정체성이 중요한지 설명해주셨다. “시인(詩人)이 되는 것보다 시민(市民)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지인분의 말씀에 감명받으셨던 얘기도 덧붙이셨다. 참고로, 월식 선생님은 ‘커뮤니티 아티스트’라는 직함도 가지고 계시다. (선생님께서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서사를 키우는 문화기획 작업을 주로 하신다. 예술가 김월식의 매체는 ‘커뮤니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다음은 팅(Ting) 이었다. (‘팅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줄 알았는데, 다들 그냥 ‘팅’이라고만 부른다고 들었다) 팅은 왜 팅이 되었는지 소개해주셨다. 팅의 본명은 김희연(金喜連)이고, 풀이하면 ‘기쁨이 연달아 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매번 기쁨만 올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때문에 희연 선생님께서는 닉네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셨다. 당시에 가르치시던 중학생 아이들이 팅커벨에서 따온 ‘팅’을 추천해줬고, 희연 선생님은 그때부터 팅이 되셨다. 팅은 솔직히 말하면 팅이라는 이름을 이렇게 오래 쓸지는 몰랐다고 하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생님께 잘 어울리는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발음할 때 혀로 앞니 뒤쪽을 탁 치는 느낌이 좋아서 계속 부르고 싶은 이름이다. 팅⋯⋯팅⋯⋯ 팅⋯⋯. 버릇없이 계속 부르고 싶은 느낌이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이런 날, 다 같이 n분의 1로 자기소개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팅은 그런 자기소개를 자기는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n분의 1 자기소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팅은 한 사람이 너무 오래 말하면 “땡!”이라고 외쳐서 다음 차례로 넘어가게 할 거라고 했다. 딱 김월식 선생님이 싫어하실 만한 방식이다) 나는 그런 자기소개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지만, 팅이 그것을 제안한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팅께서’라고 쓰려다가 느낌이 너무 어색해서 ‘팅이’라고 고쳐 썼다. 이게 글을 쓸 때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존칭을 계속 쓰면 글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 만약 시정을 요구하시면 그때 가서 고쳐야겠다)
당시에는 아카이브를 고려하여 모두의 자기소개를 열심히 받아 적었는데, 지금 와서 쓰려고 보니 그걸 다 적으면 좀 별로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아예 안 써놓으면, 특히 나처럼 사람 얼굴이랑 이름 잘 못 외우는 사람은 한 5주차나 되어서야 누가 누군지 겨우 알아볼 것 같고. (나는 이전에 다른 기획 과정에서, 꽤 오랫동안 모든 참여자들을 ‘어떤 분’이라고 칭했었다. "어떤 분은 ~~ 이렇게 말씀하셨고, 또 다른 어떤 분은 ~~ 이렇게 말씀하셨다"와 같은 식으로) 어차피 내가 아무렇게나 쓰는 거 김월식 선생님께서도 다 알고 뽑으신 건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써야겠다.
아래는 내가 자기소개를 들으면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대략적으로 적은 것이다.
◆ 최태규 님: 최근에 공모 사업을 떨어지신 것에 대해 매우 큰 불만을 가지고 계심. "악성 민원인"(자칭, 그리고 타칭).
◆ 우창효 님: 前 금융맨, 现 대학로 연극배우. ‘배우는 신과 인간의 경계 속에 있는 일’이라는 연출가의 말에 감명 받으심. 대학로에만 가면 꼭 아내분과 손을 잡게 되신다고 함.
◆ 박은진 님: 자기소개가 두 개였음. 하나는 명동성당 관련된 거였는데 다 못 받아 적었다. 두 번째는 ‘어슬렁거리는 것 좋아하는 전시에 미친 자’. 예전에 미술관에서 “트럭에 치인 것 같은 충격”을 받으셨던 기억.
◆ 전아림 님 : 몰랐던 재미를 발견하면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음. (남들과 ‘공유’하는 즐거움)
◆ 허은경 님: 기록 마니아(낙서가 주 매체). 지하철에서 눈썹 펜슬로 기록한 적도 있음. (월식 선생님과의 질의응답: 손을 다치면? 왼손으로 쓸 거다. 왼손도 다치면? 발가락으로라도 쓸 거다)
◆ 이예울 님: 백수(라고 자기소개를 시작하심). 영화 만들었음. 중학생 때 ‘솔약국집 아들들’ 보고 영화에 꿈이 생김. (찾아보니까 드라마이긴 함 - 영화적인 장면에 빠지셨던 것)
◆ 유은옥 님: 또 다른 백수이심. 50대의 꿈은 미술대학에 다니기, 60대의 꿈은 콜라텍 다니기. 본인의 예술이 자꾸만 수학ㆍ과학 지식과 연결되는 것에 불만.
◆ 손유지 님: 전라도 정읍에서 19년 + 대전에서 13년 + 서울에서 3년 살아오심. “1일 1아이디어”가 별명이나, 너무 바빠서 7월 14일 아이디어는 없었음. (대신 13일 것 소개해주심)
◆ 박지혁 님: 누가 같이 오자고 해서 왔는데, 정작 그 사람은 안 옴. “방구석 예술인”이라고 하셨지만, 집 밖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것 같음. 국악 전공자이고, 현재는 ‘즉흥음악’이라는 분야 작업을 하고 계심. “그만할 수 있는 영혼은 아니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음.
◆ 정정은 님: 작년부터 꽃밭을 가꾸셨는데, 잡초를 뽑으며 오롯이 치유되는 시간이었음. 인맥의 나비효과로 여기까지 오시게 됨 (꽃밭같이 가꾸는 언니 추천 → 오일 파스텔 수업 → 에서 만난 기획자의 추천 → 작곡 프로그램 → 에서 생긴 궁금증 → 영등포 도시기록자 프로그램 → 산으로 간 배)
◆ 심수민 님: 법학과 전공 및 졸업예정자, 그런데 갑자기 사진에 관심 생김. 여의도의 특허분쟁연구소?(정확히는 기억 안 남)에서 일하심. 니콘 750D 사용 중(부럽다).
◆ 이상은 님: 가수 이상은이랑 헤어스타일 비슷하심. 삶의 모토를 준 책은 「시지프 신화」. 성북구 거주 중 (오기 힘드시겠다...)
◆ 박상현 님: “재미를 찾고 재미를 만드는 재미주의자 박상현”. 방탈출 마니아. 방탈출 정기 모임에서는 “너 몇 방 했어?”라고 물어본다고 함.
◆ 이근학 님: 문래에서 양조장 운영 중. 일을 굉장히 많이 하시고, 무슨 자문 위원까지도 하심. 스펙이 대단했다. 하나하나 소개할 시간은 없었어서, 정확히 무슨 일하셨는지는 모름.
◆ 현아람 님: 4살 때부터 예술인. 이분도 스펙이 대단하심. 피아니스트, 장애 관련 앙상블 단체 대표, 장애 통역 관련 일(근데 수어는 못 하신다고 함. 어떻게 통역하시는지 궁금하다), 무슨 교육, 뭐시기 회사 대표 등등⋯⋯.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일”이라고 표현하셨지만, 하나하나가 엄청난 것들이었다.
◆ 김혜송 님: 담당자님. 별명은 ‘나비’.
[추가] 첫 수업에 못 오신 분들에 대한 소개
조은영 님은 음악을 전공하신 기획자이다. 조카가 생기고 나서 (정확히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림도 그리게 되셨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짝을 찾고 계시다.
이주환 님은 사진을 전공하셨다. 용산역 홈리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관련 작업들을 하셨었고, 최근에는 연구 중심의 전시 기획에 초점을 두고 계시다. 요즘의 관심 분야는 생태와 교육이라고 한다.
두 분의 인상은 정말 달랐다. 비교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두 분의 목소리 크기 차이가 눈에 띄었다. 나는 은영 님의 데시벨을 주환 님께 조금 나눠드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내가 주환 님과 멀리 떨어져 앉아서 주환 님의 이야기가 잘 안 들렸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은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주환 님과 얘기 나눌 기회도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은영 님은 음악을 전공하셨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전공이었는지는 못 들었는지 아니면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성량이 좋으셔서 성악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왠지 노래를 잘하실 것 같다. 내게는 성악을 전공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인상이 (그리고 특히 성량이) 비슷하셔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박상현 님의 아카이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