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와 3주차에는 각각 멘토 김월식 선생님과 팅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무슨 강연이냐고? 글쎄, 뭐라고 한 마디로 딱 설명하긴 어렵다. 공식 일정란에도 ‘멘토 특강’이라고 쓰여있을 뿐이다. 두 분의 특강은 말 그대로 특별한 강의였다. 지역 아카이빙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라거나, ‘산으로 간 배’가 어떤 배인지 알려주는 프로그램 소개는 아니었다. 참여자의 입장에서는 두 번의 특강이 산으로 간 배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멘토들이 프로그램과 아무 관련이 없는 얘길 하고 있네, 그러니까 타이틀이 ‘산으로 간 배’겠지, 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첫 시간에, 월식 선생님께서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관찰과 탐색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만져 ‘보고’
들어 ‘보고’
느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두 멘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멘토 선생님 두 분의 이야기에서 몇 가지 교차되는 지점에 대해 쓰고자 한다. 많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철저히 내 관점에서 편집될 것임을 미리 밝힌다. 다만 주저 없이 쓸 것이다.
세상을 살아보다: 편협한 정치적 예술꾼 / 상상력 기술자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당신을 “세상을 편협하게 보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해 주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 특히 예술가라면 더더욱 - 세상을 ‘넓게’ 보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월식 선생님의 시선은 한없이 뾰족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예술가와 무당의 공통점은 ‘안 보이는 것을 먼저 본다’는 것이다. 어쩌면 남들이 안 보는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이 예술가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 정도로 예술가 김월식의 작업들은 너무 편협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길거리에 널린 상가 빌딩에서, 김월식의 시선은 대한민국의 문명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들을 보았다. 발가락에 색연필을 끼우고 노는 어린 딸에게서, 김월식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곧 야생성을 잃어가는 것임을 떠올렸다. 김월식의 시선은 동네 호프집에 대해서도 글을 썼다.
팅은 자신을 예술가라고 소개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편협하게 본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예술적이었다. 팅은 어렸을 적, 집안 형편이 어려워 물 떨어지는 소리에 잠 못 이루던 현실에 대한 얘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어린 팅은 이부자리에 누워서 그곳이 열대우림이 되는 상상을 했고, 순식간에 서러운 가난의 물소리는 안락한 보금자리의 리듬이 되었다. 팅은 그때부터 상상이 자신에게는 현실을 버티는 기술이 되었고, 지금도 상상을 설계하고 도식화하는 일인 기획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을 배워보다: 햇빛을 찍어 먹기 / 바다를 모방하기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어린 따님을 찍은 영상을 보여주셨다. 화면 속에서 아이는 벽에 드리운 햇살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보고 있었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그 광경을 직접 보시고 팬데믹 상황이 아이들에게서 자연과 함께하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먼저 느끼셨지만, 한편으로는 원초적인 배움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한다. 문명이 만들어놓은 인간다움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세상을 관찰하는 방법은 우리에게도 다양했을 것이다.
팅은 ‘바다의 움직임에서 춤을 배웠다’는 이사도라 덩컨의 말을 듣고 무작정 바다로 가 보았다고 한다. 바다를 보는 것은 팅의 춤 실력에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팅은 그 뒤로도 틈날 때마다 바다를 보러 갔다. 어느 날 팅이 인적 드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낚시하던 어르신이 그 모습을 보고 젊은이가 무슨 안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그렇게 팅은 어르신의 집에서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팅은 자신에게는 도피처였던 바다가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터전임을 깨닫게 되었고, 더 이상 배우기 위해 혹은 도망치기 위해 바다를 찾아가지 않았다.
세상을 담아보다: 음주 가무 / 할머니의 몸
잘못된 상식이지만 좌뇌는 이성적인 영역을, 우뇌는 감성적인 영역을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김월식 선생님께서는 우뇌를 활성화하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다. ① (마)약 ② 음주 ③ 가무. 1번은 불법이니 사실상 두 가지 방법만 알려주신 셈이다.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음주만으로도 충분히 이성적인 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지 않느냐고, 몸을 왜 움직여야 하냐고 말이다. 월식 선생님께서는 가무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몸이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팅은 어느 날 수레를 힘겹게 지고 가는 할머니를 보았다. 피부가 쭈글쭈글하게 늙은 할머니였다. 늘어진 민소매 옷 사이로 뾰족해진 젖가슴이 거의 다 보였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팅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저 나이까지 살아낼 수 있을까? 그 순간, 팅은 갑자기 할머니의 몸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삶을 담아낸 그릇으로서의 몸. 할머니의 몸을 뒤덮은 주름을 타고 삶이 여러 갈래로 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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