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 숙제: 내가 생각하는 '산으로 간 배' 성과

나는 어떤 것을 성과로 볼 것인가?

조은영 님: 즐거움과. 보람, 긍정적인 미적 경험의 전이가 성취되면 좋겠습니당~~^^


손유지 님: 어릴 적 나는 ‘성과’를 반짝이는 트로피 같은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 만들어진 성과가, 알고 보니 쓰레기로 가득 찬 모형 침대 같은 거라면?
겉은 멀쩡한데, 막상 누우면 냄새나고 등허리가 욱신거린다.
사실 침대로서의 기능도 하지 못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맨바닥에서 자고 말지‘
라는 마음이 드는 결과물은 좋아하지않는다.

단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든 마구 채워 넣은 ‘성과’는, 아무 의미도 없다.
본질 없이 껍데기만 남은 것들,
보여주기 위한 결과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과정은 사라져버린 것들.
성과라는 이름을 달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순간, 그건 그저 ‘성과 흉내’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으로 간 배’는 결과보다 과정을 존중하는 공동체처럼 느껴졌다.
사공 각자가 자신의 리듬으로 노를 젓는 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위로와 공감이 그 안에 있었다.
난 그런 철학이 좋다.

오히려 목표만을 향해 조급히 나아가는 모습은, 겉만 멀쩡한 침대처럼 보인다.
결국 기능하지 못하는 ‘성과’라면,
차라리 유의미한 노 젓기 속에 머물고싶다.

나는 내가 참여하는 모든 프로젝트,
시간을 들여 만나는 사람들,
강의 하나, 책 한 권을 대할 때,
단 하나라도 ‘얻어갈 것’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성과라고 여긴다.

나는 내 삶을, 하나의 조각상이란 비유를 자주하는데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조각이란, 돌덩이 속 천사를 발견하고, 필요 없는 것을 깎아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삶의 덩어리 하나를 더 깎아냈고,
먼 미래, 언젠가 완성될 나만의 조각상에 끌을 든 몇 번의 터치 —
얇은 칼끝으로 세밀하게 묘사하든,
큰 덩어리를 과감히 떼어내든,
그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진짜 성과다.

그리고 나를 더 정교하게 깎아가기 위해
좋은 안목,
방향을 비춰주는 멘토,
함께 깎아주는 동료들을 만나는 것.
그 또한, 내가 말하는 ‘성과’다.


박은진 님: 어정쩡함을 내려놓고 나만의 뾰족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는것.

↳ 김월식 멘토: 어정쩡한 뾰족함도 좋아요, 확증적이지 않은 불확정성은 가능성과 동의어^^

↳ 박은진 님: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가능성들을 펼쳐보겠습니다. 충동적인 일들은 가슴뛰는 일들과 만나있으니까요.

↳ 정정은 님: 아 그렇네요. 확증적이지 않은 불확실성은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보면 쉬운 것 같지만 말하려고 하면 잘 나오지 않는, 이런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월식쌤의 머릿속이 멋지십니다😆


심수민 님: 영등포와 친해지기!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작업 나누기! 영감을 서로 주고 받으면 좋겠다! 작지만 확실한 성과가 될 거 같아요 :)

↳ 김월식 멘토: 동료를 얻는것, 함께 살아갈 사람을 얻는것은 또다른 삶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죠^^


최태규 님: 선생님. 저는 요즘 들어 옛 어른들의 말씀을 다시 되짚어보는 순간이 부쩍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모종의 개인적 사유로, 요즘 부쩍 화날 일이 많은 저는. “참을 인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 속에는 “세번 정도 참았으면, 살인도 인정!!!!” 이라는 옛말의 숨겨진 참된 의미를 깨달으며, 우리 민족의 인정 넘치고 호방한 기상을 느끼는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번 수업에서 들은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 이라는 표어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표어를 다 쓰기가 귀찮아서 “삶을 예술보다”만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 표어는 사실 로베르 필리우 (Robert Filliou)라는 프랑스 출신의 예술가가 처음 쓴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베르 필리우는 1926년 태어나, 살아있었다면 아마 올해로 100살 정도 먹은 예술가입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으로 건너와 UN에서 활동하다. 한국전쟁당시 한국 3년간 머물다 첫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한. 한국과도 나름의 인연이 있는 예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로베르 필리우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가졌던 직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코카콜라 공장노동자”가 그의 직업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번돈으로 공부를 했고 경제학 석사를 취득했고, UN에 들어갔고, 한국에 오고 결혼을 하고, 예술가가 되고, 마침내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났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가 미국으로 오지 않았다면? 콜라공장의 노동자로 돈을 벌지 않았다면? 경제학 석사를 받지 않았다면? UN파병으로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그의 삶이 애초부터, 마치 하늘에서 똑 떨어진 “예술가”였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 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전쟁이 끝난 유럽으로 부터 떠나온 이민자의 삶, 그리고 정착을 위해 시작된 노동자의 삶, 그렇게 일해서 번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다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먼 나라를 찾아온 그의 삶이 그의 예술의 바탕이 되었음이라 생각합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 말을 저는 “누군가의 인생보다, 예술이 오래 남으니, 예술의 위대함에 경배하라!”라는 식으로 배워왔던 사실을, 그리고 예술가란 그저 숭고하고 거룩한 흔적을 인류의 유산으로 남기는 사람인 것처럼 추앙해 왔던 지난날의 무지와 오해를 고백합니다.

하지만, 제가 겪어온 예술을 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그 말처럼 영원히 기록될 자신의 예술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속에는 “예술은 길고 인생을 짧으니, 짧은 인생을 귀하게 여기라는 의미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술은 언제나 긴 시간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 우리는 우리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요?

↳ 최태규 님: 숙제(성과에 대해 이야기히기)는 조금 더 걸립니다.

↳ 김월식 멘토: 하지만, 제가 겪어온 예술을 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그 말처럼 영원히 기록될 자신의 예술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런 예술가의 편협된 생각이 결국은 이 세계를 다양하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예술이 없는 세상에서 산다고 가정 해 봅시다' 뭐 사는것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세상은 그저 보편적인것들로 채워지겠죠. 쓸모와 효용성 위주로. 예술가들은 그대로 살게 둡시다. 어차피 그들의 삶도 그리 녹녹치 않아요. 거의 도시빈민으로 살고 있으니, 가난한 예술가들의 곤조가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 김월식 멘토: 그리고 예술이 길 듯이 인생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내 삶의 지난함이 내 예술의 지난함과 유사한이 삶과 예술을 따로 따로라 생각지는 않아요. 나의 입장에서는 남은 생을 부끄럽지 ㅇ않게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을 존중하며 살기를 바랄 뿐 입니다. 한명의 시민으로 또 한명의 시인으로


현아람 님: 무용지대용!


정정은 님: 저의 이번 과정 성과 목표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긴 시간을 통과한 후,
나의 4번째 우물안 개구리 탈출 작전


이소정 님: 저의 성과는 즐거움입니다.
참여하는 제 마음이 매번 즐겁다면 저는 ok입니다 🥳


이주환 님: 성과급이란 단어를 생각해보면 성과와 실적은 따로 구분되지 않고 이용되곤 합니다. 이런저런 계약을 체결하고, 목표/목적에 부합하는 형태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것에 상응하거나 초과하는 결과를 대가로 임금을 제공할 때에 이런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런 용어는 마치 기계처럼 자원을 투입하고 일정 시간 내에 결과물이 우리 앞에 마술처럼 나타날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나 예술가가 신청하는 기금 역시 유사한 형태로 성과주의의 형태를 표방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원서 신청에서 중간 결산, 결과보고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행위자에게 체현됩니다.
게임의 규칙을 잘 아는 사람만이 게임에 뛰어들 수 있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불안정을 감내할 수 있다면 성과주의 체계에서 눈에 띄게 결실을 맺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모종의 불형등이 있을 것입니다.
성과 중심의 구조 속에서는 타자와의 관계도 목적론적인 믿음 아래에서 이루어질 공산이 크지 않을까요? 어떤 의미에서 각각의 행위자에게 운명지워진 것처럼 보이는 육체적/정신적 삶이 달라질 수 있고 그것을 unlearning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한다면, 또는 마주침을 통해 다른 삶을 이해하고 다른 존재로 생성/변전할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오늘날 통용되는 성과란 무엇인지, 그리고 [아렌트의 비교를 빌리자면] ‘노동’이 아니라 ‘작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주환 님: 에고 오타가 있었네요, 오늘 광주로 내려가 참여가 어려워 숙제만 전달드립니다...

↳ 김월식 멘토: ‘게임에 이길 수 없다면 게임의 룰을 바꿔라’- 백남준.. 이미 50여년전에 백남준 선생님이 서구의 심장에서 백인들과 앵글를색슨ㅇ을 향해 던졌던 화두입니다. 성과를 결과로 보지 않는 저한테는 섣과으이 룰을 바꾸는것이 여러모로 중요합니다. 중요한것은 질문이기도 하지만 성과에 대한 본인의 생각, 본인의 언어가 더 중오하고 궁굼해지네요. 광주에서 전시기힉 잘 하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작은 예시를 통해 조금 더 부연해주세요. 더운날^^


허은경 님: 저는 일상기획자로서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나만의 '돌멩이'를 찾아서 같이 쌓아보는 것을 이번 <산으로 간 배>의 성과로 삼으려 합니다.


이예울 님: 저의 시선을 스스로 느끼는 것을 이번 성과로 삼고 싶습니다


이근학 님: 뒤늦게 올립니다 ㅎ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전 둘 다 아닙니다. '산으로 간 배'를 통해 타고난 어정쩡함으로 어디에,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천연 발효에 관심이 가서 직접 빚은 누룩과 자연농 쌀을 이용한 우리 술 빚기를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발효하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빚는 사람에 따라 매번 다른 균이 내려앉는 발효의 우연과 예측 불가능성을 이용해 문래에서 빚은, 문래의 맛이 나는 술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그와중에 또 예상하지 못한 균체, 미생물부터 사람까지 다양한 간섭이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창효 님: 성과 얘기만 들어도 긴장과 스트레스.
성과가 없는 과정은 변명과 핑계라고 질책을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작가님의 강의를 들으며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미롭고
궁금합니다

과연 우리의 이웃은
예술의 멋과 맛을 느끼고
궁금해 하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유은옥 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과정 두번수업을 들었는데 자꾸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 같아요. 완전 어려운 수업인것 같기도 하고....ㅋㅇㅋ.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동네 소리와 색, 몸짓과 틈새를 해석하는 감각을 배우는 과정을 성과로 남기겠습니다.^^♡


전아림 님: 나는 누군가가 내가 표현한 장면이나 공간을 통해 감정을 느끼고, 거기에 잠시 머물러 줄 때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그래서 이번 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과는 결과물 자체보다도 감정이 연결되는 경험이다. 영상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내가 좋아하는 순간과 장소를 꺼내어 보여주는 일은 어쩌면 나를 조심스럽게 내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영등포라는 배경 속에서 내가 마음을 붙였던 공간들을 표현하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도 특별한 감정이나 기억으로 새겨진다면, 그게 내가 이 활동을 통해 바라는 전부다.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풍경이나 놓치기 쉬운 감정들을 꺼내어 보여주고, 그걸 통해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서로 스치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히 완성된 무언가보다 더 오래 남는 성과가 될 것이다.


이상은 님: <산으로 가는 배>를 통해 얻고 싶은 성과
: 일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기르고 싶어요.

직장인 극단에서 7년 정도 활동했는데요. 공연연습과 실제 공연할 때만 사는 게 즐거웠습니다. 이제 극단을 그만뒀는데,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더 많이 느끼고 싶어요.

그런데 마음만 바꾼다고 싶게 되는게 아니에요.제 성향상 끝임없이 뭔가 새로운 것을 갈구하구요 ㅠ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일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길러, 일상의 소중함과 영감을 동시에 얻고 싶습니다.


박지혁 님: 아침 햇살에 눈을 떠서 하얀색 커튼을 열어젖히며 한강이든 바다든 수영장이든, 뭔가 물이 보여.
그리고서는 멋지게 기지개라도 켜 준 다음에, 내가 좋아하는 키로당 30만 원짜리 게이샤 생두를 직접 로스팅해서 300만원짜리 그라인더에 에스프레소 분쇄도로 곱게 갈아.
그리고 1,000만 원짜리 커피 머신을 사용해서 산미가 도드라지는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거지.

그러고 나서 캔버스 앞에 앉아 사색해. 떠오를 때까지. 계속해.
뭐, 떠오르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러다 악상이 떠오르면 건반을 두드려.
이미지가 떠오르면 붓을 들어.
그러다 보면 예술적 고뇌에 빠지게 되있어.
극심한 고통이 와.
견뎌.
창작의 고통으로 몸부림 쳐.

내 안에서 도출되는 그 무언가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는 것.
그것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
절대 게으르고 나태한,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

첫 번째로는 나 스스로에게 설득시켜야 하고,
두 번째로는 모든 지구인들에게 나를 소개해.

이 모든걸 구현할수 있게되는 사건의 시발점이 오늘이길 바래 봅니다.

결론.
고작 이 맨토들을 이용하여 큰돈을 벌어 음악장비와 물감을 사겠다.
이것이 산으로간 배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성과이다.
안되면 말고.
끝.


최태규 님: "결과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해.” “연구성과가 뒷받침이 되어야 해.” “용어도 실험도 정확해야 해.”
제가 학교에 다닐 때 늘 듣던 이야기였습니다. 한 교수님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실험에서 결과를 보는 순간. 그 결과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셨습니다. 교수님은 그 성과를 바탕으로 출세가도를 달렸고. 결국 종신 교수직도 얻으셨죠.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인생의 성과는 더욱 필요해졌습니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집을 사고, 누군가는 억단위의 연봉을 받는….

저는 결과의 차이가 과정의 평가를 쓰는 세상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 되어 버렸죠. 그래서 ‘결과의 품질과 완성도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지점은, 저에게 있어 너무나 힘든 시간을 선물했습니다. 저는 실험 결과가 안 나오면 고통받고, 결과가 잘 나와도 과정과 결과를 의심하는 병에 걸렸거든요.
저는 저 자신의 실험과정과 결과를 믿지 못하는 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이건 너무나 힘들고 자괴감 드는 일이었죠. 그렇게 저는 제가 좋아하던 일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던 일이 세상의 수많은 약물 중에 쓸모 있는 약물을 찾는 일이었고, 그렇게 찾아낸 약물이 실제 사람들의 치료에 쓰이기 까지는 수십년의 연구가 필요하며, 그 중에서 제가 찾아낸 약물은. 수십년의 세월에서 다른 후보물질과 경쟁하며 실제 상용화가 안 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저는 그 일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같았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옛날 저를 많이 아껴주시던 농촌진흥청의 실장님을 찾아가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자신은 가정학과 출신이라 옷만들고 음식하는걸 배우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연구를 하게 되었고,
이 길이 천직이라 여태 이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 며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고민끝에 화장품제조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화장품 연구원이 되었죠.

그리고 여태 그일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그런계기였으나, 이 일을 하며 얻어진 것은 이 일에는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의 기준은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 쓰는것이고 코나 입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안정성과 안전성의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을 통과하는 것이 기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샤넬에서 나오는 세럼이 있습니다. "샤넬 수블리마지 르세럼" 이라는 건데요. 제 돈으로 산건 아니고, 회사 다닐 때 회사카드로 타겟 제품 구매하면서 사서 써봤던 제품입니다.

가격이30ml에 7-80만원정도 합니다.
최고급 라인 세럼인 샤넬 수블리마지 렉스트레는 절반의 용량에 무려 81만원이더군요... 1ml당 54000원 정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제형이 너무 좋습니다. 발림성, 퍼짐성, 수분감, 수분 유지력, 텍스춰, 마무리감까지.. 정말 좋습니다. 심지어 쌀알 한 개 정도 크기만 발라도 팔 한쪽 전체를 다 바를 만큼 수분 유지력과 발림성이 좋죠.

누군가는 "화장품이 거기서 거기지" 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피부로 닿는 감촉을 극한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나 저와 같은 화장품연구원 같은 사람들은요.

그런데 이게 굉장히 미세한 차이이고, 훈련이 되지 않으면 이러한 차이가 기술의 차이이고, 연구의 성과라는 것을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합니다.

물론 이 정도의 차이로 피부가 아기처럼 변한다거나 새살이 돋고 피부병이 낫는 기적 같은 변화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래봤자 화장품이니까요.

그러나 누군가는 이런 미세한 차이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시간을 들여 연구를 하고,
또 돈을 들여 사서 바르는 행위를 합니다.

저는 이 과정이 예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예술이 없다면 세상에 예술을 느끼는 감각이 사라진다면 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도 필요가 없겠죠.
더러워진 피부는 사포로 갈아내면 그만이니까요.

선생님은 "예술이 없는 세상에서 산다고 생각 해 보자"고 하셨는데 저 역시 이런 말초적인 감각을 연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구는 당최 끝이 나지 않더군요. 누군가는 "리치하고 찰진느낌" 이라하고 누군가는 "기름지고 찐득인다" 고 느끼는게 제가 하는 일의 모호함 이고, 이 모호함을 과감히 결론짓고, 끝맺음을 내는것이 제가 결과를 내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늘 자신의 과정과 결과를 의심하고, 믿지못했던 제가.

이제는 제 자신의 감각을 믿고 모호함을 받아들이고 나의 결정을 수용하는 것이 나의 성과 입니다.

일본의 차 문화를 정립한 센리큐의 일대기를 정리한 "리큐에게 물어라"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선교사들 에게 자신의 명물 다기를 늘어놓고 값을 매겨보라고 합니다.
선교사들은 값을 쳐주기 어렵다고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에 굴하지 않고 리큐에게 묻습니다.
"아름다움은 누가 정하는것이냐?" 그러자 리큐는 대답합니다.
"아름다움은 제가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