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5주차 아카이브

영등포 상상적 관찰하기

4회차 수업 주제는 ‘멘토와 함께 지역산책(관찰의 기술)’이었다. 참여자들은 직접 돌아다니며 영등포를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고 전해 들었다. 나는 부득이한 일이 있어 그날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김월식 선생님께서 지역 탐방에 대한 자신만의 기록을 단체 카톡방에 공유해달라고 말씀하셨기에, 나는 그것들을 읽고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지 상상해 볼 수 있었을 뿐이다.

나는 영등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전혀’ 없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예컨대, 나는 지도 위에 어디가 대림이고 어디가 여의도인지 표시할 수조차 없다.

내가 영등포 지역 탐방에 대해 아카이브를 할 수 있을까?

<국화와 칼>이라는 책이 있다. 루스 베네딕트라는 미국의 인류학자가 쓴 책인데, 오래된 책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본학의 고전으로 일컬어진다. 특기할 만한 점은 그가 단 한 번도 일본 땅을 밟아본 적 없이 일본 사회를 심층적으로 연구했다는 것이다. 그가 미국으로부터 연구를 위촉받았을 당시 태평양 전쟁 직전이었다. 일본을 방문할 수 없었던 그는 문헌이나 진술 등 외적인 자료에만 의존하여 글을 썼다.

뭐, 그 정도로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 또한 제대로 걸어본 적도 없는 동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내게 주어진 자료는 4회차와 5회차 수업에서 요구된 참여자들의 숙제들뿐이다.

루스 베네딕트와 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인류학자의 연구는 필히 정밀해야 하지만, 산으로 간 배 코디네이터의 글은 상상에 의존해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쓸 이야기의 절반은 참여자들의 기록에 의존할 것이며, 나머지 절반은 나의 상상력에 맡긴다.


여의도

나는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역 승강장에서 내린다.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자판기”가 있다. 박지혁 님의 돈 1600원을 꿀꺽한 녀석이다.

개찰구 앞에 심수민 님이 보인다. 무엇을 감상하는 중일까? 손에 쥔 카드를 단말기에 가져다 대니, 삑- 소리가 났다.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삑- 소리가 각기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과 겹치며 특유의 리듬이 만들어졌다. 이것을 듣고 계신가 보다.

가을을 마중 나온 우창효 님이 보인다. “80대 노인의 노래소리 같은 매미소리”만 들린다. 함께 개울에 발 담그고, 여름을 만져보았다.

갑자기 외로워하는 우창효 님을 두고, 강변서재로 향한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라는 책 한 권을 조우한다. 정정은 님이 책과 두 시간째 수다를 떨고 있었다.

똑똑한 사람들의 멋진 얘기는 때때로 뜬구름 잡기처럼 들린다. 걷다 보니 정말로 하늘에 뜬구름이 보인다. 최태규 님이 그것을 잡고 매달린다. 여의도에 대한 지적인 담론을 꺼내놓으셨기 때문이다.

이주환 님은 선유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그러자 주환 님도 태규 님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버렸다.

저 멀리 백화점이 보인다. 태규 님과 주환 님께, 이제 내려오셔서 같이 백화점 푸드코트나 가자고 말했다. 마침 최태규 님께 할인 쿠폰이 있었다.


대림

대림중앙시장을 걸었다. 낯선 풍경의 음산함에 두려워하는 유은옥 님을 만났다. 잠시 동안 함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하늘에는 전선이 즐비했다. 왜 이리 얽혀 있나 했더니, 허은경 님이 대림동의 전선으로 실뜨기를 하고 있었다. 전아림 님도 함께였다.

조은영 님은 시장에서 오리알을 열다섯 개나 구입했다. 은영 님은 알들을 따뜻하게 품어서 부화시키면 부리부리 알콩태극새에게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부동산 앞에 줄지어 늘어선 트렁크가 보였다. 모두가 궁금해했는데, 박은진 님께서 그것의 정체를 알아냈다. 옆옆 가게에서 팔려고 진열해 놓은 것이었다.

현아람 님은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난무한 지름길로 서둘러 갔다. 하지만 가는 길에 참 예쁜 강아지를 만나는 바람에, 도착시간은 나와 비슷했다.

과일가게에 도착했다. 과일을 한 근 단위로 팔고 있었다. 박은진 님이 귤을 한 근 구매했고, 다 같이 나눠 먹었다.

김월식 선생님께서 음료수를 사주셨다. 박상현 님과 이근학 님은 중국 음료수(붉은색 왕라오지 캔 음료)에 도전했다. 두 분의 권유에 이상은 님도 한 모금 맛을 보고, 쌍화차에 계피를 섞은 맛이라고 했다.

이예울 님이 안 보여서 어디 갔냐고 물으니, 문래동의 백두산메탈로 가서 박OO씨 인터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옆에서 허은경 님이 재떨이를 관찰하신다고도 들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은경 님은 담배를 피우시지 않는 것 같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