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식 멘토: 어제 지역에서 관찰한 것에 대한 몸의 기억을 복기해서 기록해 봅시다. 이 기록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남의 눈치는 전혀 보지 말고 오직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동네 풍경에 대한 기록입니다... 말하자면 몸의 기억을 기록이라는 과정으로 번역하는 학습입니다. 누구는 눈이 기억하고 누구는 귀가 기억하고 누구는 코가 기억할 수 있습니다. 또 누구는 어슬렁거리던 몸이, 발바닥이, 허벅지와 장단지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자, 이 기억에 맡닿은 바람의 소리, 거리의 습도들, 온도들도 모두 호명해서 팩트와 상상력이 결합된 오직 나만의 고유한 기록을 올려주셔요^^
박지혁 님:
정정은 님:
우창효 님:
가로등에 비친 숲길
개울에 발 담그고
여름을 만져 본다
갑자기 외롭다
눈물이 난다
잊혀진 내 이름 석자
그래도 난 사공이다.
배역이 작다고
작은 배우가 아니다
김월식 멘토:
썬 프라자는 김수근이 지은 집의 입구가 되었다. 창문을 최대한 줄이고 어둡고 습한 집의 내부에 했빛 가득한 광장이 나온다. 아이러니. 남영동 대공분실을 만들어 권력에 복무한 김수근의 흔적을 생각하면 이 썬프라자는 놀라운 자본주의의 반전을 보여준다. 대림동에서 만난 햇빛의 광장에서 미끄러지나 라스베가스의 불빛이 보인다. 눈이 부시니 몸이 부신다. 이 초현실적인 감각은 어쩌면 대림동 터주의 화답이 아닐까? 반기는 것인지 밀치는 것인지 몸이 부시니 자잘러 손 벌이 저절로 쫄아든다. 쫄아든 이두박근은 장단지와 허번지의 지시적 반응, 걷는것은 그저 겨우겨우 관성적 움직임일뿐 한번도 마주해본적 없는 이 예물적인 환타지는 롤렉스를 만나 또 한번 미끄러진다 혼주같은, 허세쩔은 양아치 같은, 인기있는 연예인 같은, 로또맞은 졸부같은 압력은 대림동의 공기를 잠시 얼린다. 우창효의 말처럼 여름을 만져 얼리는 기술을 연마 한 자의 업적일까? 커피한잔에 8,500원하는 거룩한 커피솝에서 도망치듯 나와서.... 문이 열린것이 얼마나 다행읹지 마라향과 두리안의 냄새가 얼마나 친근해졌는지 그따위 반가움이 도데체 무언지를 생각한다
생각이 흐르는것을 연결한 막 詩, ㅋㅋㅋ 이렇게 편하게 막 써 주세요^^
조은영 님: 문화(文化)의 이음새
내가 ‘문화’라는 단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영등포 아트스퀘어에서 있었던 ‘문화도시 이야기’의 발표와 성과공유회에 참석하면서다. 그곳에서 다양한 지역의 문화사업 발표와 사례를 들었고 패널에게 “문화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질문했었다. 그리고 타임스퀘어 광장에 있는 문화라운지 ‘따따따’에서 DADA라는 이니셜의 열쇠고리를 하나 받으면서 영등포라는 장소의 문화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생활문화공유 공동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나는 문화(文化) 또는 Culture란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만 했다. 우선 Culture는 어원이 라틴어로 ‘가꾸고 경작하다’ 의미의 ‘Culture’에서 파생된 단어다. 식물을 기르거나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부터 미생물을 생산하는 것까지 포괄하는 이 단어는 함께 무언가 경작하고 가꾸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 같다. 반면에 한자문화권인 한글에서 문화란 단어에는 문(文)이 들어가 있다. 문화(文化), ‘그럼 나는 어떤 문화를 즐기고 관심을 두고 있지?’ 그러고 보니 내가 영등포의 장소성에 관심을 두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지역에서 발견되는 음식문화와 한자로 된 간판들 때문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조선족의 중국말의 음성과 성조가 섞여 있는 우리말 소리가 낯설지만 새롭게 다가왔고 주된 활동지였던 신길1동과 신길 4동에는 조선족 이주민이 특별히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거리를 걸으면 온통 한자로 된 간판과 음식점부터 눈에 들어왔다. 식당에 들어가면 처음 들어보는 중국말과 이주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낙천적인 소리가 오래전 독일에서 이주민으로 지냈던 기억을 떠올린 적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신길지역 주민과 어떤 문화를 공유하고 함께 나눌지에 대한 고민은 여의도와 신길1동 사이에 위치하는 샛강생태공원의 장소를 알게 되면서 문화(文化)에 대한 질문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우선 샛강생태공원과 마주하는 신길 1동 지역을 탐색하면서 1899년에 완공된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京仁線) 철도와 1호선 신길역이 지나는 철로 안쪽에 자리하는, 공간적으로 고립된 밤 동산 마을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유일한 문화적인 공유지 역할을 하는 밤 동산 작은 도서관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 도서관 관장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주민과 지역주민을 도서관으로 유입했던 사례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매우 독특한 공간적, 지리적 위치를 갖는 밤 동산 마을과 여의도 사이에 자리하는 샛강생태공원의 존재는 호미바바(Homi Bhabha)가 ‘문화의 위치’에서 이야기하는 문화번역의 사이 공간(空間/In Between)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이 틈새에서 어떤 제3의 가능성이 내재하는 문화적인 실험이 가능할 것 같았다.
호미바바(Homi Bhabha)가 이야기하는 사이 공간(空間/In Between)은 구조주의의 언어관점과 달리 서로 다른 두 언어 간의 문화적 차이에 주목하는 문화번역(Translation) 개념이다.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19세기 제국주의 이후, 식민과 비 식민, 서구와 비서구 간의 문화적 위계에 의한 문화적 이행(Transition)이 우리말 소리의 변화와 직결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마침 모국어의 소리와 맛을 연결하는 실험적인 작당 기획도 진행하고 있어서 밤 동산 원주민과 신길동의 이주민을 만나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다문화와 다양성에 대한 전시회를 담(淡)갤러리에서 열기로 했다. 황석영 작가의 자전적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모랫말 아이들’의 소설에서 인용한 ‘모랫말 레시피’와 허준의 동의보감에서 영감을 받은 ‘동의보감 레시피’는 바로 그 언어에 내재하는 사유를 맛과 기억공간과 연결하는 기획이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는 동아시아의 사유를 오미(五味)의 다섯 가지 맛과 오방색과 연결했고, 이것은 우리의 7일이라는 시간과도 연결되어있고 의식주의 모든 전통적인 공간의식과 연결된 중요한 역 근대의 문화적 사유다. 나는 우선 ‘밤‘을 소재로 밤 동산 지역의 원주민들과 교차배어(交叉胚語)를 형성하기 위해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눴고 근대의 한자문화권의 소리와 탈근대를 거치며 혼종적(Hybrid)으로 우리말이 변화했던 문화적 차이가 원주민과 이주민에게 발견되는지 다양한 경로(글,그림,솔글씨,꼴라쥬)를 통해 시민참여형의 워크샵을 진행하며 구체적인 탐색을 이어갔다.
문화는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언어를 통해 전이되고 확장된다. 신길동에 거주하는 이주민 조선족을 인터뷰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모국어를 학교와 가정에서 배우고 성장했기에 자국어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점과 조선족 자치주가 있는 길림성(吉林省)의 지명과 신길(新吉)동과 대림(大林)동의 두 글자가 같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거주하는 것이 지역명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바로 이러한 점이 신길동에서 발견되는 한자문화권의 흔적이며 미디어 매체를 통해 안방극장으로 전파된 탈근대의 미국문화와 모든 대중문화를 선도했던 여의도와 신길동의 문화적, 장소적 사이 공간(空間/In between)에서 발견한 것이고 그것은 자국 문화의 혼종적(Hybrid) 경계에서 성장한 X-세대 기획자의 문화적인 시 공간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는 여정이 되었다. 동시대는 원주민과 이주민의 문화를 분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온 오프라인에서 역동적으로 이주하는 문화의 향유자(Cultural Diaspora)가 확장되는 새로운 문화가 도래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마치 나무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마을과 공동체를 지켜가는 분들을 신길동에서 만날 수가 있었고 그분들과 이번 기획을 통해 새로운 이음새가 만들어지는 순간,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이의 순간을 어떻게 유지하고 함께 지켜갈 수 있을지에 대한 숙제가 이제 내게 남았다.
2025년 1월 7일 조은영
이근학 님: 대림은 이름 만큼이나 큰 물건들이 많았다. 시장에 널린 해바라기씨부터 고추, 오이 그리고 대추알까지 모든 게 우리나라 것의 두세 배는 되어 보였다. 나는 그것들을 신기하게 살펴보았지만 그 이유는 "천하의 창고요, 만국의 시장(박지원, 『열하일기』 中)"에 대한 경탄보다는 "나는 중국인이나 조선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쓰메 소세키, 『만한소감』 中)" 류의 안도에 가까웠다. 우리에 갇힌 코끼리나 수조 속 돌고래를 보듯 어디선가 뚝 떼어다 붙여놓은 구경거리처럼 보였던 것이다.
낯설은 거리감을 두고 관찰하기를 멈춘 건 어느 어둑한 공원에서였다.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새된 아이들의 소리. 한국 말과 중국 말이 섞인 바람에 정확한 의미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떤 의도인지는 파악 가능한-엄마를 부르거나 이번엔 내 차례라며 싸우는, 동네에선 흔한 투닥거림을 듣고 나서야 이들이, 이곳이 사람과 사람이 사는 동네라는 사실을, 그들을 구경거리로 여기던 나 자신이야 말로 이상한 구경거리였으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대림'은 실제보다는 내 상상 속 가장 아래의 어딘가, 꿉꿉하고 매캐하기만 한 구석에 위치해있었으므로, 나는 머리와 발을 따로 놀리는 채로 그저 현실의 대림에서 방황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대림에서 얻은 사과 한 알을 집에 와서 잘라 먹었다. 여느 사과보다 작은, 평범한 작은 사과. 맛도 향도 특별할 게 없는 과육은 오늘의 대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심했다. 그게 전부였다.
박은진 님: 몸으로 느낀 한근의 감각
대림동에선 과일을 한 근 단위로 팔았다.
생각해보니 지난주 방문한 중국 룽커우에서도 과일을 500그램 단위로 팔았다. 열흘 가까이
중국에 있으면서 체리는 복숭아보다 비싸다. 사과의 가격은 어제보다 저렴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지낼 땐 과일의 가격을 비교하지 않는다. 아니 비교할 수가 없다. 내가 주로
다니는 대형 마트들은 과일에 얄궂은 한 팩의 단위를 주로 쓰는데 이 한팩이 블루베리냐
천도복숭아냐에 따라 상자의 크기가 천차만별로 다르다. 마트 지들 맘대로 한팩은 400그램이었다 600그램이었다 1키로가 되곤 한다. 게다가 다른 마트에 가면 같은
과일이라도 다른 상자의 크기에 담겨 당최 홈플러스가 싼 것이냐 이마트가 가격 경쟁력이
있느냐는 들어만봐도 무게가 척척 나오는 신의 손을 가지지 않는 이상 가격 비교는
불가능하다.

그러다 목도한 대림동의 슈퍼마켓에서 귤 한근을 사고자 했다. 이쯤되려나 하고 담았던
귤들의 무게는 직원 아주머니를 통해 달아보니 1키로가 넘었다. 나의 터무니없는 무게
감각에 실소가 나왔다. 담았던 봉투를 다시 열었다. 이번에는 신중하게 귤을 집었다. 무게가 얼마쯤 될까 어림짐작하며 400그램을 담으려고 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성공. 신기하게도 내가 산 귤 1근은 대림동에 동행한 멤버의 수 7과 같았다. 약지만한 귤 7개가
400그램이었다. 귤을 한개씩 나누어먹으며 우리는 그렇게 한근한 사이가 되었다.
왜 나는 대기업이 쥐어주는 한 팩이라는 단위에 그동안 의문을 품지 않았나. 그게 한 팩이야
하고 강요하면 그걸 자연히 한 팩으로 받아들이고 지냈다. 그들의 입맛대로 규정된 한팩에
순응했던 나 스스로에 대해 떠올려본다.
기업이나 사회가 강요하는 기준에 나를 끼워맞추려 애쓰던 순간들,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그날 대림동 산책에서 나는 순수하게 자유로웠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여과없이 떠들어댔다. 내가 어떻게 비추어질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과일을 무게단위로 측정하는 것처럼 인생에서 나만의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800그램이 되었다.
허은경 님:
#1
언제부턴가 전봇대를 보는 게 흔치 않은 일이 되었다. 신경 써서 찾아보지 않는 이상 그 물체를 인식하는 일은 일상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대림동의 하늘은 실뜨기를 하는 것처럼 전선이 즐비했다. 전봇대가 이리 눈에 잘 띄다니.. 익숙한 낯설음이다. 그 전선들을 따라 골목 안으로 눈을 돌리니 비슷비슷하게 지어진 벽돌 주택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정겨웠다. 분명 내 기억 속의 동네는 이런 모습인데, 언제부터 골목은 넓어지고 건물은 높아지고 가게들은 사라졌을까.
타국인이 많이 산다는 대림동에서 정겨운 옛모습을 만날 줄이야..
#2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를 갈아타려고 여의도의 한 정거장에 서 있는데, 매미 울음소리로 가득한 공기에 기분이 묘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우렁찬 매미 울음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반갑다기 보다는 씁쓸했다. 외딴 별에 불시착한 느낌이었다. 과연, 불시착한 생명은 매미일까 아니면 인간일까.
최태규 님:
“사상누각“ 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모래 위에 세운 누각(樓閣)“이라는 뜻으로,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여 오래가지 못할 일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있는 이 성어는 마치 여의도를 두고 하는 말이라 느껴졌다.
여의도는 한강의 지류를 따라 내려온, 모래들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섬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등포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섬을 보유하고 있는 ”섬의 도시“다.
이 섬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장기간 최고층 빌딩으로 이름을 날린 ‘63빌딩’과 현재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인 ‘파크원 타워‘가 있는데, 모래위에 세운 것 치고는 마천루(摩天樓)를 참 많이도 지은 곳이다.(그러고 보니, 세계 최고층 빌딩인 ’브루즈 할리파‘도 사막의 모래위에 지었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건설사(삼성물산)가)
이 섬을 대표하는 두 개의 마천루 외에도 여의도에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꽤 많다. 국회의사당이라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도를 보유한 교회처럼 기록적이고도 상징적인 건축물이 제법 많이 있다. 나는 이런 건축물에서 우리의 현재가 유물이 되어갈 미래를 상상한다.
우리나라는 재건축에 꽤나 민감한 편이라, 공인된 구조기술사가 건축물의 구조안전확인검사를 통해 ”불합격“판정을 주어야 재건축이 가능한 법적 절차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불합격 판정을 기원하며 불합격 판정에 축하 현수막 까지 거는 기이한 현상이 건축물에 대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온다. 극중의 주인공역을 맡은 이선균의 직업이 구조기술사다.)
여의도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이룬 도약의 역사를 간직한 장소다. 수많은 마천루 안에서 수조원의 돈이 움직이고, 정치적 사건들이 벌어지고, 언론과 미디어의 중심이었던 이 섬에 세워진 건축물들이 그 현장이었다. 그 사이 건축물들은 꽤나 낡았다.
나는 이 오래된 건축물들에서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꿈꿀 미래를 상상한 건축가들의 희망을 생각한다. 비록 이제는 땅값과 자산 가치로 변화된 건물들이지만, 한때는 그 꿈의 그릇으로 남겨질 유물이 되어 오랫동안 머물러주기를 바라본다.
유은옥 님: [보이는게, 들리는게, 냄새나는게 전부가 아니야 - 음산한 기운을 알까?]
대림시장의 화려하게 반짝이는 네온 간판들은 멀리서 보면 불꽃축제 처럼 화려 한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그 빛은 표면을 가리는 얇은 가면에 불과했다.
대림시장에 음산한 기운을 느껴 봤나?
여기는 마치 범죄의 도시가 숨 쉬는 심장부 같다.
형형색색의 불빛 아래, 골목은 눅눅하고 옥수수굽는 연기로 매캐한 공기에 잠겨 있고, 상인들의 웃는 얼굴에는 경계가 먼저 깃들어 있었다. 손님을 부르는 목소리도 어딘가 날이 서 있고,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그 속에 흐르는 기류는 같은 음색—의심과 탐색이었다.
간판들이 번쩍이는 만큼 그림자는 짙게 늘어져, 모퉁이마다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표면의 화려함 뒤에는 오래 묵은 비밀과 거래, 그리고 쉽게 입 밖에 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빨간지붕 만두가게 옆에 앉아 담배를 꼬라물고 있던 아저씨들이 왠지 "너 조심해라" 위헙하는 오싹함이 느껴졌다.
대림시장은 낡은 가로등 불빛은 피멍처럼 퍼져 벽을 타고 흐르고, 골목 어귀마다 보이지 않는 시선이 매달려 있었다.
금이 간 간판은 피로 물든 흉터처럼 빛을 잃었고, 상인들의 대화 속 웃음기는 날카로운 칼날에 잘려 나간 듯 사라져 있었다.
대림시장은 빛으로 치장했지만, 그 빛을 밀어내면 곧장 음산한 마믐이 깊게 드러나는 곳이었다.
이주환 님:
8월 11일 저희가 만나기 전, 저는 새벽 3시부터 용산역에 가기 위해 부랴부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 공원의 어스름을 뚫으며 보았던 것 중 하나를 이야기할까 해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선유도에는 일제의 채석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울의 경관과 공항을 만들기 위해 석재를 채취했고, 여의도의 비행장을 만들기 위해서 모래와 자갈을 끌어다 썼어요. 선유도는 인간의 건조 환경과 기반 시설 제작을 위해 줄곧 파괴되었던 셈입니다.
선유도에는 넓은 백사장이 있어 건기 때에는 걸어서 갈 수도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석재 채취와 함께 1952년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나 섬의 형태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정수장이 설치되면서 형태가 또 변했다고 합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선유도의 형태는 공원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런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라고 합니다. 제가 서울에 올라왔을 당시 이미 공원의 형태였기에 이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답니다. 선유도의 사례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건조 경관을 역사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현재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새벽녘을 달리며 선유도가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지 상상 속에서만 헤아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사진이 공개되어 그 모습을 일부라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유한 사진이 바로 그 사진이어요.
이상은 님:
@시장 : 전구들이 공중에 운치있게 걸려있다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사진을 보니 전선들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다른 시장들의 천편일률적인 철제뚜껑(?)보다 정겹다 ㅋ 특히 네모 천쪼가리들이 걸려있는 곳.
@부동산 : 같이 하는 팀원이 부동산에 캐리어들이 즐비하게 서있다고 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워 부동산 중개일하는 지인에게 물어봤다. 대림동 일대가 재개발, 재건축이 활발히 추진중인데, 방문객들이 서류, 전자기기 등을 편리하게 옮기기 위해 필요할 거라고. 계약,임장을 하러 다니는데 귀찮게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솔직히 공감이 안 갔지만, 재개발 지역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임시로 맞겨둔 것인가 했는데… 재개발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고정관념 <대림동=차이나 타운>을 깨트리는 계기였다. 정말 재개발때문이라면, 이 지역에서 뭐가 사라지고 뭐가 남게 될까?
@로스톤 카페/갤러리 : 음료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기 위해 들어간 곳이다. 너무 럭셔리한 인테리어가 우리가 답사한 대림동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그냥 나왔다. 이질감 느껴지는 이 건물 뭐지? 자수성가한 조선족의 과시용 건축? 찾아봤더니 40대 건축주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노후 주택을 헐고, 대림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슬럼화를 극복하고 싶어 지었다고 한다. 취지가 좋은데 위화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그 건축주라면? 월식샘이 유휴공간을 활용한 인생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었다. 월식샘이라면 이 노후주택을 어떻게 했을까?
@중국음료 한 모금 : 월식쌤이 음료수를 쏘셨다. 난 안전빵으로 베지밀A를 골랐지만, 중국 음료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마트에서 빨대를 가지고 나와, 다른 멤버에게 부탁해 중국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단맛이 훅 올라왔는데 끝맛은 수정과이다. 약간 맥콜같음. 다른 음료도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쳐서 아쉬었다. 나이를 먹으니 확실히 덜 얖샵해진 거 같아 속으로 피식 웃었다.
박상현 님:
<왕라오지 캔음료를 마시다>
대림동에 거주한지 6개월.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 중국식품마트를 왔다갔다하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간캔을 한치의 고민도 없이 골라서 가져간다. 그들 따라 나도 자연스레 빨간캔을 사볼까 생각 해봤지만 두려웠다. 원재료가 한국말로도 적혀 있음에도 맛이 상상이 안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믿지 못했다...
그때 그날은 달랐다. 혼자 갔을때는 용기가 안 생겼지만 다함께 마트를 들어가서 다같이 음료를 고를때 용기내어 빨간캔을 골랐다.
재미있게도 근학님이 동지가 되어 주셨다 ㅎㅎ
먹기 전까지도 무슨맛일까 두근두근거렸고,
자신있게 캔을 열어 한입 먹었다.
의외로 먹을만 했다. 식혜와 수정과를 섞은 맛? 흠... 꿀맛도 나고, 한약 맛도 나고, 꽃향도 나고, 이게 무슨맛일까 ㅎㅎ
그래서 이 두근거림과 재미를 나혼자 알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무슨 캔음료인지 알려주지 않고 블라인드로 맛보게 해줬다.
다들 이런 말을 했다.
" 옅은 한약맛 달달한약 쓴맛은 적고 단맛을 올린 "
" 밥먹으면서 먹을 취향은 아니다 "
" 달지 않은 디저트와 어울릴것같다 "
" 김빠진 콜라에서 한약 맛 "
" 술깨는 꿀물차, 루이보스향 "
중국식품마트에는 한국마트에서 쉴게 볼 수 없는 여러 재료들이 있다. 두리안, 마라탕 재료들, 중국 참외 등 혼자 도전하지 못하는 것들을 함께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그 재미있는 사건의 현장 증거들을 모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