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차 숙제: 사물의 서사

사공들은 각자 관심 있는 권역을 돌아다니며 사물의 서사를 발견했다.

김월식 멘토: 각자 관심 갖고 있는 권역 내의 사물에 집중해 봅시다. 각자 관심 권역을 돌아다니며 탐색하시다가 주목되는 사물의 서사를 작성해서 올려 주셔요. 사진과 동영상도 함께 올려주셔요. 단순한 사물의 미시적인 탐색을 통해 우주적 서사가 가능할까요? 물론 팩트, 상상 모두 가능합니다. 자! 모두들 화이팅!!!


이근학 님:

문래동의 묵은 때를 벗기면 뭐가 나올까? 넓직한 지식산업센터 또는 초고층의 아파트 단지가 나타나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하얗고 파란 유리로 둘러싸인 그곳에 들어서면 코튼 디퓨저의 향기와 함께 이십사 시간 최적의 온도와 습도로 맞추어진 에어컨의 사려 깊은 숨결이 마중나올 것이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각종 재개발 계획들은 바로 이 세련되고 깔끔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낡은 동네의 때를 불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

때는 시간이 남기고 간 흔적이다. 이틀 전 목욕한 몸이 벌써부터 근질근질한 이유는 그 사이에 묻어난 사십 팔 시간 때문이다. 밀어도 생기고 씻어도 생긴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깨달았다는 사람들의 얼굴은 대체로 땟국이 줄줄 흐르는 편이다. 어쩌면 비범함은 간지러움을 참는 능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목욕탕 바닥엔 때가 굴러다닌다.
문래동 골목에도 때가 굴러다닌다. 쇠를 갈 때 나오는 땟가루, 다른 말로 쇠톱밥이라 불리는 쓰레기다. 일 톤 트럭 가득 실린 쇳톱밥과 철공소 샷타 안으로 힐끗 들여다 보이는 갓 연마된 기계는 방금 전까진 한 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새 기계는 개운해보인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장님도 그 기분을 못 견뎌 막걸리 한 잔이라도 걸치러 가셨을 것이다. 모두가 개운함을 사랑한다. 더러움을 견뎠던 건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다. 하지만,

개운함은 금새 가신다.

철광석은 본디 녹이다. 녹덩이가 녹고 갈려 만들어진 쇠는 반짝이고 단단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녹이 슬어 푸르딩딩해진다. 우리가 박물관의 고대 무기 전시실을 걸으며 칼날의 번득임 대신 옛 사람의 손때와 지난 날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녹은, 때는 다시 낀다. 깨끗함은 결코 일상이 될 수 없다. 어딘가 간지러운데 딱히 긁고 싶은 곳이 없다면 그건 그냥 받아들여야 할 생의 값이다. 우리가 시간을 이용하는 비용이다.

다시 문래동을 걸으며 이 골목의 미래를 생각한다. 철공소가 헐리고 창작촌이 밀려나 기억의 수챗구멍 사이로 빨려들어가고 백년에 가까운 역사가 지우개 때처럼 버려지고 난 뒤에 그 자리를 메울 첨단의 도시, 테크노파크와 무슨 무슨 팰리스들을 상상한다. 그 다음 그리고 또 그 다음 누군가의 사포질로 갈려나갈 때와 가루들을, 그리고 진짜 마지막에 이 자리에 남을 게 무엇인질 그려보지만 도저히 떠오르질 않는다.

문래동 4가에 이른다. 문래동이 시작되었다는, 원래는 일제가 세운 공동주거단지였던 곳이다. 지금은 거의 철공소로 변한 이 낡은 동네, 좁은 골목 사이 사이는 아직도 백년 전 그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별 거 없다. 그냥 사람 살고 잡동사니 굴러다니며 쓰레기가 뒹구는 동네 뒷골목일 뿐이다. 그 너머 펼치진 5가, 6가의 아파트들은 공장 자리였다고. 전해들은 이야기다. 실제로는 흔적조차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때를 기다린다. 돈을 벌 때, 투자할 때, 도전할 때... 때로는 그만둘 때를 고민하기도 한다. 그렇게 불어난 때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밀어도 밀어도 끝도 없을 것이다. 때를 벗기면 또 때가 나온다. 문래동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정정은 님:




우창효 님:

처서의 배신!

가을을 마중나간다
고추잠자리, 코스모스를 찾아
여의도 생태공원 으로..
80대 노인의 노래소리 같은 매미소리만 들린다.
형체가 있는 것은 모두 고개 숙이고 있다
헉! 또 문자가 온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수분을 많이 섭취하라고 한다.
행안부,서울시,영등포구 심지어 멀리 구로구 까지 나를 챙긴다
사공을 챙기는 한국은
진정한 이웃이다
내일이 기다려진다



박은진 님: <대림동과 부동산, 트렁크의 상관관계>

대림동에서 목격한 부동산 앞에 줄지어 늘어선 트렁크.

부동산은 말그대로 움직이지 않은 머무름의 상징인건데 그 앞에 이동의 아이콘인 트렁크가 함께 하다니 생경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거처를 정하지 않은 이들의 짐을 잠시 맡아주는걸까, 아니면 중국인들이 왔다가 땅보러 가면서 잠깐 두고 갔나?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난 부동산 앞 트렁크의 최초 발견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리서치를 해보기로 결심한다. 조사의 방법은 부동산 사장님과의 심층 인터뷰로 가닥을 잡았다.
내향성인 나에겐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지만 호기심이 조금 더 컸다.

폭염 속에서 다시 들린 대림 시장은 밤의 산책과는 많이 달랐다. 지붕이 있는 시장이 아니라 더 정겹다고 생각했던 시장에 대한 감상은 땡볕 아래서 자취를 감추었고 쉼 없이 들리는 중국어 호객소리와 어지러운 한자들의 향연에 과일 앞에 쓰인 국산이란 글자의 의미를 혼동하게 했다. 여기 한국 맞기는 한거지?

부동산과 트렁크의 상관 관계를 알아보러 시장에 갔으니 지나며 보이는 부동산들을 유심히 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부동산 앞들이 죄다 가려진 것 없이 말끔하다. 설마설마하며 문제의 부동산을 찾았는데 그집도 역시. 허망한 느낌을 예감하며 부동산에 가서 물었다.




부동산의 초로의 사장님도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시원시원해 보이는 성격의 단골 손님이 대답을 받는다. 부동산 사장님이 휴가 갔을 때 옆옆 가게에서 물건 팔려고 트렁크를 디피해 놨었단다. 가게를 나와서 보니 부동산 가까이에 여행용 가방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대림동은 내가 사는 곳과 다르고 그곳의 부동산에 트렁크는 뭔가 사연이 있을거다. 지레 짐작한 나의 선입견과 마주친 날이었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눈은 보일것도 보이지 않는 주술을 부린다.

집에 돌아오면서 주차금지 표지판에 한자만 잔뜩 적혔길래 불법주차를 하는 건 주로 중국인인가, 생각하다가 번역기를 돌리니 아케이드 게임 광고였다. 슬롯머신 마블게임 영업중 “당신이 싸우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 아련함은 또 무엇이냐, 번역기도 다른 세상과 만날 땐 크게 믿을 게 못된다.



나는 또 얼마나 많은 편견에 절어 살아가고 있나. 흐르는 땀으로 절은 옷과 함께 체감한 대림동의 오후.



심수민 님:

삑ㅡ

샛강역에 서 있으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작은 의식 하나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바쁘게 걸음을 옮기다가도 개찰구 앞에서 잠시 멈추고, 손에 쥔 카드를 단말기에 가져다 댄다. 그 순간 들려오는 삑 소리는 짧지만 강렬하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승차 여부를 확인하는 기능음에 불과하겠지만, 조금 더 오래 서서 귀 기울이다 보면 이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풍경을 감지하게 된다.

아침 시간, 인파가 몰려들 때는 소리도 몰려온다.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삑 소리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과 겹치며 특유의 리듬을 만든다. 어떤 순간에는 무작위처럼 보이다가도, 금세 일정한 박자로 수렴한다. 이 반복 속에는 도시가 숨 쉬는 호흡이 숨어 있다. 직장인의 무거운 어깨, 빠른 발걸음 이 모든 것이 삑 소리와 어울려 하나의 음악처럼 들린다.

퇴근 무렵, 같은 장소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또 다르다. 낮보다 느슨하고 길게 이어지는 리듬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무심히 카드를 대지만, 나는 저마다의 하루가 마무리되는 종소리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샛강역은 매 순간 소리를 내며 이 도시의 살아 있음을 전달한다. 단말기의 삑 소리는 여의도의 심장 박동이자, 도시 전체의 맥박 속에 스며 있는 작은 음표같기도 하다.

(붐비는 공간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워 촬영은 하지 못했습니다..)



박상현 님:




"책을 읽多, 행복을 빚多, 영등포를 품多"
- 공원 공용 책장 문구

작년 대림동에서 활동하다 우연히 만난 마을 주민.
그 분은 나에게 다가와 "이거 내가 만들었어!"라며 말을 걸어주셨다.
그 뒤로 자식들의 생애와 현재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까지 알게되었다.

그분이 만드신 것이 바로 원지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공용 책장이다.
아이들을 위해 설치 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구청이 관리를 안하고 있다면서 관리를 해야하는데... 해야하는데... 라며
도돌이표 외침을 하셨다.

마치 나에게 고쳐달라는마냥

어떻게 하면 될까요? 라고 물어봤었는데, 동사무소에 전화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사라지셨다.
속으로 구청에 전화하면 거기도 도돌이표겠지...라며
나는 핑계삼아 그분의 말씀을 흘려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이번에 다시 한번 찾아갔다.
책장은 멀쩡히 있었다. 10개월만에 다시 찾아왔는데 다행히 그대로였다.
역시 변하는 건 사람인걸까.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과 돗자리 펴고 쉬고 있는 부모들,
벤치에 앉아서 쉬고 계신 어르신들.

이것이 삼위일체인가
이것이 세대대통합인가
이것이 마을의 정인가

너무 보기 좋았다. 사라진 마을의 정이 아직 대림동에는 남아있어서.
가만히 앉아서 눈 감으면 들리는 소리들이 얼마나 정겨운지.

물놀이하며 떠들고 노는 아이들 소리
집에 들어가서 너가 씻기면 내가 밥할게라며 전략을 세우는 부모들의 싸움
역시 그늘이 시원해라며 세상 걱정 없는 어르신들의 대화

다시 궁금해졌다. 또 다시 10개월 뒤 찾아왔을때는 어떤 모습이 보일지
나는 여기에서 마을의 정을 만나多



이예울 님:



백두산메탈은 헤비메탈 클럽의 이름이었다.

박ㅇㅇ씨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헤비메탈 그룹 백두산의 이름을 본뜬 클럽을 만들고 싶었다.
백 두 산 메 탈
그룹 백두산의 음악이 흐르고, 검은 선글라스와 메탈의 회색 빛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드는 헤비메탈 클럽.
방 한 켠에 붙여둔 붉은 색의 다섯 글자가 그의 열정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러던 1990년 추석, 사촌동생 정ㅇㅇㅇ씨가 슬그머니 그의 방문을 열었다.
“누님, 저 이름 제가 좀 쓰면 안되겠습니까?”
정씨의 손 끝이 벽에 걸린 다섯 글자를 항햐고 있었다. “문래에 가면 못 만드는 금속이 없다.”라는 문래동에 철공소를 시작하려는데 이름이 너무 탐난다고. 박씨는 깊이 고민했지만, 평소 아끼던 동생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 까짓거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내어주자. 동생이 잘 된다면 그 또한 이름만큼 값진 일이겠지. 박씨의 결단에 정씨는 에어기타를 연주하며 화답했다. “누님! 정말 고맙습니다! 잘해볼게요!”

그렇게 35년이 흐른 2025년까지도 박씨는 종종 문래의 백두산메탈을 찾는다. ‘초록색 간판이라...’
동생의 백두산메탈이 자리잡은 문래동은 90년대까지만 해도 2,500여개 철강업체가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 2000년대에는 청계천, 을지로 개발로 옮겨온 공장들이 더해져 한때 더 붐볐다. 그러나 영원한 전성기는 없었다. 자동화, 대형화, 재개발 등 압력이 겹치며 지금은 약 1,250개 업체만 남았다.
철강 업체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젊은이들이 모여 작업실을 열고, 멋진 가게를 운영하며 새로운 열기를 불어넣었다. 박씨는 그 열기 속에서 생각했다. 자신이 꿈꾸던 강렬한 붉은 빛의 백두산 메탈은 아니지만, 초록 간판 아래의 모습도 그럭저럭 이름에 걸맞는 운명이리라.
하지만 그 젊은이들마저 떠날 위기에 처했다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생각에 잠기고는 한다. 초록빛 백두산메탈이 이곳에 언제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픽션)



조은영 님: < 대림중앙시장에서 가져온 15개의 오리알을 바라보다 떠오른 기억들 >

시작은 1987년 홍콩 르누아르 영화에서 첨 들어본 한 배우의 광동어 목소리에 매료되어 용돈이 모이면 명동의 중국대사관 앞과 회현역 지하에서 홍콩백판을 사모은 시절부터다. 오향장육의 삭히 오리알의 식감처럼 야들야들하고 탱글탱글한 식감의 목소리를 라디오에서 듣던 팝송와 가요, 일본 시티팝에서 느껴지지 않는 정서가 있었다.

그 기억이 까마득해질 때 쯔음, 나는 기획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도모하던 중에 한국천문연구원의 안상현박사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별자리'란 책을 보고 한,중,일이 공유하는 천문도에 대해 알게되었다. 동북아시아의 시공간의식이 집약된 천문도를 재해석하고 지난 100년동안 한반도에서 멸종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그래픽 영상을 재현하는 전시를 대구에서 열었고 관람자들에게 멸종동물의 이름을 지어달라 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300명 정도의 아이들이 각자의 상상속의 동물을 그림으로 표현했고 그 그림들을 통해 나는 대상표상적이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부리부리 알콩태극새: 콩알같은 두 눈과 앵무새의 긴부리를 가진 이 푸른 붉은 빛의 부리부리알콩태극새가 바로 그것이다. 이 새를 만나고 난 후 경북 영주에서 콩세계박물관을 방문하고 콩의 원산지가 동북아시아인 것을 알게됬다!

2025년 8월 19일, 대림동에서 유명한 동해반점에 가보았다. 한림대 성심병원 근처어 있는 이 오래된 중국집의 간판과 카운터에 놓여있는 주판이 그 때의 홍콩영화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짜장면의 면발과 식감은 오리알의 그것엔 못 미쳤지만 향수가 느껴지는 이 작은 식당에 손님들이 붐비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대림중앙시장으로 향하는 길에 눈에 확 띄는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은 조선족분들을 만났다. 매일 저녁 저녁 운동겸 단체로 춤을 추신다는 얘기에 어떤 음악에 맞춰 춤을 추시는지 궁금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처음 보는 흥미로운 광경도 영상에 담았다.

지난주에 공유한 오리알사진은 대림중앙시장에서 발견했다. 다양한 식재료와 물품가운데 이 날 것의 오리알을 집에까지 조심조심 가져 간 이유는 따뜻하게 품어서 부화시켜 부리부리 알콩태극새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허은경 님:



문래의 골목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바로 재떨이다. 골목 곳곳에 제법 세련된 각양각색의 재떨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시작된 건진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작은 시작에서부터 발단이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하나 둘 다른이들의 자연스러운 동조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아무리 봐도 강제성이 느껴지는 오브제는 아니다.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쓸 수 있는 마인드와 사람들의 기꺼운 동조가 골목의 기분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근데 생각해보면 살짝 이중적이다. 동네의 환경미화를 위해 마련한 것이겠지만, 엄밀히 말해 흡연에 일조하는 것이니 말이다. '차가운 배려', '흔쾌하지 않은 친절'.. 뭐, 이런 식의 이율배반적인 단어가 맴돈다.
그리고 나름 세련된 모양새에 언뜻 "역시 창작촌이 자리한 동네답군..!"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재떨이가 마련된 곳은 작가들의 공방보다는 카페나 음식점 앞이 대부분이다. 무언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문래에 관심이 간다. 어떠한 산으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쪽으로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젊다는 것이니까.



최태규 님:

“쌤! 쌤 백화점 자주 오세요?”

인터뷰를 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 만나기로 한 타임스퀘어에서 가벼운 인사를 나눈 다음 대화에서 그 선생님은 나에게 백화점을 자주 오냐고 물었다.

“영등포에 일이 있으면 꼭 오는 편이에요. 실제로 여기 오려고 영등포를 오는 일도 많구요.”

우리는 한동안 백화점과 타임스퀘어를 배회하면서 한적한 카페를 찾아 떠돌았다.
선생님은 자신은 백화점에 잘 안 간다고 말했다. 나는 하찮은 것이라도 백화점을 가서 구경이라도 해보고 산다고 말하니,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미묘한 굴욕감을 느끼며, 앞으로 눈에 보이는 사치품에도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백화점을 좋아하지만, 사치를 부릴 처지는 못 된다. 매일 백화점 어플을 확인하며, 출석하고 포인트를 모으며, 쿠폰을 받고, 라운지 무료커피 쿠폰을 받을 궁리를 하는 얌퉁머리 없는 체리피커다. 그렇게 자주 백화점을 가니 재무 관리 어플에서도 나를 “럭셔리 소비자”라고 구분해 놓았다. 기껏해야 5000원 쓰고 오는 주제에 럭셔리라니...

어린 시절 백화점은 근사한 꿈의 공간이었다. 정글같은 영등포의 노점상들을 헤치고, 낙엽처럼 흩뿌려 길바닥을 덮은 술집과 빠친코의 전단지와 일수명함들을 짓밟고 들어선 백화점 1층의 이미지는 콧등을 후려치는 값비싼 향수냄새와 함께, 반들반들 윤기 나는 공단리본으로 반듯하게 묶인 선물상자 같은 느낌이었다.

바깥의 아수라 지옥과 단절된, 반짝이는 그곳에서 한없는 친절을 누리며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심지어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도 늘 즐거웠다.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은 직원 식당도 밥맛이 좋았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면서 가정 아쉬운 게 직원식당 못가게 된 것이었을 정도니까.(롯데, 현대, AK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신세계가 제일 맛있었다.)

이제는 당당히 백화점 푸드코트를 이용하는 고객으로서, 오천원 할인쿠폰을 써서 만천원짜리 나시고랭 세트를 육천원에 먹는 나는. 백화점에서 영등포가 꿈꾸던 흩어진 영광을 훑어먹으며 추억한다.

내가 백화점에 자주 가는 것이 분수를 모르고 사치와 허영에 젖어 방탕한 삶을 추구하는 꼴사나운 짓거리라 지탄받을 죄악이라 해도.



전아림 님:




오늘은 동네를 천천히 걸으며 평소에 스쳐 지나갔던 것들을 조금 더 주의 깊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늘 오르던 동작구의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지만, 잠시 후 내 눈길은 의외의 곳에서 멈췄다. 바로 머리 위에 얽히고설킨 전기줄이었다. 평소엔 그저 배경처럼 지나쳐 버렸는데, 오늘은 유독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바라보니 전기줄이 단순히 길을 따라 이어지는 선이 아니었다. 집과 집을, 건물과 건물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지점을 이어주고 있었다. 흡사 하나의 촘촘한 그물망처럼, 동네 전체를 묶어주는 끈 같았다. 멀리서 보면 뒤엉켜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제 역할을 다하며 연결의 고리가 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사람들의 관계가 떠올랐다. 우리는 종종 혼자라고 느끼며 살아간다. 각자의 삶에 몰두하다 보면 서로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면, 사실 우리는 이미 무수한 연결 속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구, 가족, 동네 이웃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와도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전기줄이 우리 집의 불빛을 켜주듯, 누군가의 작은 행동이나 존재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전기줄은 그저 무심히 매달린 선이 아니라, 삶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상징 같았다. 언덕을 오르며 처음엔 외로움 같은 감정이 스쳤지만, 전기줄을 바라본 뒤에는 오히려 안도감이 찾아왔다. 우리는 모두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존재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으면 놓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연결이 우리를 지탱한다. 오늘의 산책은 그래서 단순한 걸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상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현아람 님: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난무한 이 길을 걸을땐 영 기분이 좋지않다. 물론 깨끗한 길을 가려면 돌아가면 되지만 지름길을 포기할 수 없어 이길을 갈때면 찡그리고 있는 나를 보며 피식 웃음이난다.

길을 걷다보면 이제막 지어진 새건물과 세월의 흔적이 눈에보이는건물이 서로 붙어있어 참 다양한 감정이든다! 곧 새로 단장할 준비를 하는 건물들을 보며 건물주의 기분좋은 상상으로 대리만족해본다.

이와중에 강아지가 참예쁘다. 근데.. 쓰레기통옆을 걷는 아기들이 한편으론 안쓰럽다..




이상은 님:






신길(新吉)을 위한 출사표

교육봉사하는 야학이 외대 근처에 있다가 재개발 때문에 2019년애 이사를 갔다. 약 1년 후 이전 야학을 지나가게 되었다. 접근금지 딱지들이 건물마다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들어가고 싶기는커녕 이 동네를 빨리 떠나고 싶었다. 야학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갔지만 내 30대의 1/3을 차지하는 곳이다. 을씨년스러운 모습에 지난 세월의 추억들이 모두 부정당한 기분이였다. 그 후 외대 근처 갈 일 있으면, 이전 야학 가는 방향은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이번 <산으로 가는 배> 지역탐방을 재개발 지역으로 가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이런 이중적 감정이 당황스러웠지만, 5년 동안 내 관점이 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살고 있는 성신여대 정문근처 낡은 빌라와 한옥들은 4,5층 원룸으로 바뀌었다. 이 말끔한 건물들을 지날 때마다 가끔 옛날 생각이 난다. 동네 할머니가 공용 빨래줄에 널어놓은 내 빨래를 개어서 우리집 대문앞에 두었는데 없어졌다. 아마 폐지줍는 할머니가 득템을 하신 듯. 옆집 아저씨는 나를 볼 때마다 시집 언제 가냐고 물었다. 이렇게 오지랖 넓은 동네 어르신들은 요양원과 하늘나라에 가시고, 대신 (몇 년 살고 떠날) 젊은 여학생들이 더 많아졌다. 사람냄새가 덜 나면서 이 동네에 얽힌 추억이 쌓이지 않는다.

다 밀어버리고 말끔하게 지어지는 대규모 아파트들은 재미없다. 성수동의 폐건물을 개조한 카페와 집 근처 한옥으로 만든 술집은 운치가 느껴진다. 낮선 동네의 식당 간판이 빛바랬으면, 그만큼 오래된 숨은 맛집같다.

평소 역사와 지리에 관심이 많은데, 어느 날 갑자기 과거의 유산말고 현재의 삶 <도시 생활>에 관심을 가져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재개발, 재건축이 빠질 수 없지. 개인적 경험들을 돌이켜보며, 재개발에 대해 내 이중적 태도가 새삼 느껴진다. 아니 감각과 기획력의 부족이 정확한 표현이다. 옛 것을 어느 정도 지켰으면 좋겠는데 어찌 해야할지...

오늘 AI가 찍어준 영등포에서 재개발이 가장 지지부진하다는 <신길재정비촉진13구역 신미아파트>를 다녀왔다. 간판과 녹슨 문을 보니 상황이 눈에 저절로 그려졌다. 이 아파트는 1981년에 준공된, 총 130가구 규모의 작은 아파트이다. 2007년 11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만 토지 소유권 정리 문제로 재개발이 지연되었다. 2021년에 재건축 조합 설립되었고, 완공까지 7-1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최신 아파트들처럼 커뮤니티 센터는 없지만, 주민들이 소일거리로 농작물을 키우는 텃밭이 있다. 키우는 사람이 줄었는지, 인근 공사장의 포크레인 업자에게 주차비를 받고 텃밭 일부를 대여해준다고 한다. 베란다의 빨래와 쿠팡프레쉬박스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임을 환기시켜준다. 주민들이 오랜 세월 참았겠구나...

신길(新吉)은 '새로운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신미아파트 주민들을 비롯해 신길동 주민들에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길! 나는 <산으로 가는 배>를 통해 부족한 감각을 키우면서 좋은 일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을 정리해보고파 재건축이 관심이 간다. 같이 하실 분 없나요?^^



최태규 님의 5주차 아카이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제법 재미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건 바로 물 1리터를 정확히 맞추는 능력. 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지금으로부터 12년전 3월, 일이 있어 명동을 들렀다가 한 호객꾼에 이끌려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그날은 세계물의 날을 맞아 거리행사가 진행 중 이었는데. 거기에서 정확히 1리터의 물을 맞추면 경품을 주는 행사였다, 물론 약간의 오차가 허용되는 행사였지만, 거기에서 나는 컵의 용량을 한번 보고 가득 3컵하고도 3분의 2컵을 떠서 양푼에 부은 뒤 1리터를 확신했고. 그렇게 양푼에 담긴 물의 양은 메스실린더에 부어보니 1리터를 정확히 맞췄다. 행사 진행자도 놀랐던 그 행사에서 받은 경품은 겨우 흔해 빠진 머그컵 한 개 였지만. 그 컵은 아직 한번도 물을 담지 않고, 찬장안에 트로피처럼 보관되어 있다.

물론 당시에는 매일 무게를 달고, 부피를 재는 일을 했었고, 대부분의 병들이 1ml, 50ml, 100ml 250ml, 500ml, 1L로 규격화 되어있어서 그걸 매일 하다 보니 부피감이나 무게에 대한 감각이 단련이 되어있었을 테지.

하지만 요즈음 종종 마라탕 집에 갈 때면, “나는 과거의 무게감이나 부피감에 대한 개념을 잊어버렸나??” 하는 느낌이 든다. 항상 목표금액을 초과해서 담기 때문에.....

나는 늘 나의 감각에 확신을 가지기를 바랐나보다. 아직도 12년전의 그 하찮은 머그컵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사는 걸로, 감각에 대한 확신을 주는 무언가에 의지했다.

이번 수업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으로 감각한 기록들을 보여주었다. 누군가는 무게로 누군가는 맛으로, 누군가는 소리로 기록했다. 워낙 다 제 각각이라 어디는 과장되고, 누구는 묘사가 노골적이고, 어디는 왜곡이 심하며, 대충 여기저기 이어 붙인 기록들이 남았다. 나 역시 그렇게 누더기를 만든 장본인 중 하나였다.

생각해보면, 물 1리터를 딱 맞추는 것만큼이나,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마라탕 재료를 담는 일도 중요하다. 내 욕망의 무게감을 아는 일, 욕심을 더하고 덜어내는 감각이 나에게는 필요했을지 모른다.

이번 수업이 딱 그랬다. 모두가 각자의 무게감으로 보고 싶은걸 보고, 담고 싶은걸 담았다. 분명 잡탕인데 또 한바탕 담아 끓여 놓으니 맛이 꽤나 괜찮은 한그릇이 나왔다.

담아도 담아도 한없이 가볍게만 느껴지는 마라탕 소쿠리의 무게처럼, 속으로는 하찮은 욕망의 저울질을 계속 하면서도 모른척 눙치는 뻔뻔한 자세를 배우기로 한번 더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