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공유회 날이었다. 아침 열 시에 설치 시작이었는데, 일어나 보니 아홉 시 반. 정신없이 달려나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다행히 다들 자기 작품 설치하느라 바빠서 아무도 몰랐다. (너무 설레서 잠 못 이룬 탓에 지각한 것 아니냐고? 내가 양심 상 그런 핑계는 댈 수 없다) 카톡방에서는 전시 준비로 인해 전날까지도 다들 질문이 많았다. 멘토 선생님들께서는 결과물 전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한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고 계속 말씀하셨지만, 내겐 사람들이 열과 성을 다해 만든 결과물들을 보고 싶은 호기심도 컸다. 나는 잔뜩 기대가 되었다.
행사는 생각보다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좀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보고 싶었는데,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행사 일정에 나는 기가 쪽쪽 빨렸다. 결국 일정이 끝난 후에도 전시를 더 감상하지 못하고, 우창효 님과 함께 구석에 앉아 쉬었다. 그곳의 모든 기록물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대신에 사진을 잔뜩 찍어두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창효 님은 오늘을 위해 예쁜 빨간색 나비넥타이를 매고 오셨다. 파티에는 파티에 걸맞은 옷차림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일정을 다 마친 뒤에는 내가 복잡한 과정을 거쳐 넥타이를 풀어드렸다.
못내 아쉬웠다. 전시가 하루만이라도 더 길게 진행됐으면 좋았을걸. 그래도 박은진 님의 도슨트 퍼포먼스를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은진 님의 ‘노련한’(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큐레이팅 덕분에 전시를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다. 또, 박지혁 님의 즉흥 음악 (및 즉흥 드로잉?) 퍼포먼스도 좋았다. 지혁 님이 공연 전에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하셔서, 나름 책임감을 가지고 공연 중간에 끼어들어 노래(그것을 노래라고 부를 수 있다면...)도 하고 그냥 아무 말도 했다. 이날 조은영 님은 문자 그대로 “발 벗고” 나서 주셨다. 지혁 님이 즉흥적으로 음악을 만드시는 동안, 참여자들이 지혁 님의 그림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붓과 페인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들 붓에 물감을 묻혀 조심스럽게 붓질을 시작하는 동안, 은영 님은 두 발에 물감을 묻혀 지혁 님의 그림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셨다. 나는 산으로 간 배 초반에 월식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를 떠올렸다. 발가락에 마카를 꽂고 그림을 그렸다는 ‘순이’(김월식 선생님의 따님) 이야기. 마이크 앞에 서 있던 나는 은영 님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발로 그림을 그려보신 적 있나요? 있다면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요? ... 그러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얼버무리고 나와버렸다.
사실 우리에게 성과 공유회는 메인이 아니었다. 메인은 뒷풀이였다. 행사가 끝나고 우창효 님과 구석에 앉아 있었을 때, 창효 님은 뒷풀이가 본 행사인데, 앞에가 너무 길었다고 한탄하셨다. 다들 피곤해 보이는 와중에도 뒷풀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을 보니, 창효 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뒷풀이 장소는 족발집이었는데, 창효 님은 그 족발집이 여의도에서 유명한 맛집이며, 자기 집에서도 종종 배달시켜 먹는 곳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창효 님께 어떤 메뉴가 제일 맛있냐고 여쭤봤더니, 나도 몰라! (집에서는) 우리 애들이 시켰지! 나는 방에서 휴대폰 하고 있고.
나는 정정은 님, 조은영 님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아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술을 먹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나눈 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애써 다 기억해 낼 필요도 없겠지만. 여러 이야기들이 오가던 와중에, 이번 성과 공유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결과물들을 좀 더 긴 호흡으로, 여유 있게 보고 싶었는데 그럴 만한 자리가 아니어서 좀 아쉬웠다고 얘기했다. 정은 님과 은영 님도 동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가 아니라 당연한 수순으로) ‘산으로 간 배’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느꼈다. 은영 님은 반대로, 오늘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3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할지는 의문이라고 하셨다. 나와 정은 님의 입장은 은영 님과 조금 달랐다. 은영 님은 이미 예술이라는 영역에 오래 머무르셨고, 그렇기 때문에 삶과 예술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이미 해보셨겠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견해였다. 예를 들면, 창효 님처럼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처음으로 예술을 접하게 된 사람도 있고, 정은 님처럼 가정주부 일을 하다가 이제 막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사람도 있다. 나 또한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을 만큼 예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보지도 못했고, 예술에 대한 철학이 자연스레 생길 만큼 작업을 많이 해본 것도 아니다. 반면에 이미 예술을 업으로 삼고 계신 분들도 많이 있다. 그러니 각자가 느끼는 필요한 시간의 양이 다를 수밖에.
대화가 깊어지면서, 이러한 우리의 입장 차이는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완전히 동일해지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다. (다행히도,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다양성의 즐거움!) 우리는 그간의 활동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선, 나는 문화라운지 영의 공간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기에 별로 편하지 않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왔다. 몇 차례의 현장 답사 시간이 주어지긴 했었지만, 아예 매 수업을 대림동의 양꼬치집이라든가 문래동의 감성카페 같은 곳에서 진행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깔끔하고 불편한 소파에 앉아 있노라면, 영등포라는 지역에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느끼는 생생한 현장감을 모두 망각한 채, 멘토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받아 적으려 애쓰는 ‘학생’의 태도로 있게 돼 버리곤 했다.
또한 앞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내가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과정을 지역 아카이브를 위한 활동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3개월이 딱 적당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멘토 선생님들께서는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흔들고, 몸의 관성을 벗어나 보도록 멘토링하셨다. 각자가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산으로 간 배’가 모두에게 크든 작든 삶이 흔들리는 충격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생을 이런 방식으로 살아남아서 결국 이러한 모양대로 굳어져 버린 ‘나’를 흔들고, 생각의 근육도 말랑말랑하게 풀어주는 경험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더 좋은 지역 아카이브를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오랜 시간 고착화되어 왔다면, 아무리 새로운 것을 보아도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모든 것들이 내 세계관 안에서 이미 설명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어떤 것도 신기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고, 모든 ‘발견’은 나의 원래 있던 가치관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활동에서조차도 이 세상에 이미 팽배하는 가치관이 우세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지역 아카이브는 새로운 것을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요컨대, 삶을 흔드는 멘토링 자체는 아주 좋은, 게다가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이 흔들리는 경험을 소화해 내는 것도 벅찰 사람들에게 3개월 안에 뭔가 그럴듯한 결과물까지 만들어내라고 하는 것은 좀 무리한 요구였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덧붙여, 조금 변명을 늘어놓자면, 다른 활동에 비해 아카이브 하는 것이 어려웠다. 공공기관의 미적 감각을 그대로 반영한 공간에서, 멘토 선생님들의 인생을 흔드는 수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지는 않았다. 물론 선생님들은 좋은 결과물을 낼 것을 한 번도 요구하지 않으셨지만, 다들 잘 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자유롭게 아무 얘기나 해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산으로 간 배 활동이 끝나고 집에 와서 수첩을 꺼내 보면,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멘토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더 많았는데, 선생님들의 조언을 내가 옮겨 적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아서 미루기 일쑤였다.)
은영 님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해체’라는 것이 예술계에서 얼마나 오래된 담론인지 말씀해 주셨다. 사실 나는 미학이라던가 아트 씬(Art Scene)의 실태 같은 것에 대해서 거의 모른다. 그래서 은영 님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지만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확률이 높다. 또 변명하자면 하루 종일 정신없었기 때문에 몸이 피곤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해체’란 뭘까? 해체라는 거대한 담론에 우리의 활동 과정이 환원되어도 괜찮은가? 아니, 환원될 수 있는 것인가?
인문학을 전공한다고는 하지만 학업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졸업을 계속 미루는 대학생으로서, 나름대로 생각해 본 바. ‘해체’라는 말의 용례들을 생각해 보면, 외부의 공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적인 요소들에 의해 어느 순간 붕괴해버리는 것을 해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해체는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까? ‘A’라는 대상이 있다고 가정할 때, ‘A’가 ‘A’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 해체의 시작인 것 같다. (이에 대한 부연을 덧붙여보려 했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한다)
나아가, ‘인생’을 해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의 인생이 나의 인생이라는 것 자체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 바로 그런 모순에 부딪힐 때 해체는 시작되는 것 같다. 정해진 방식대로 쪼개는 ‘해부’가 아닌, ‘해체’. 인생의 해체는 결코 내가 예상하는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해체는 마치 그것이 원래부터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일어난다. 미처 듣지 못했던 나에 대한 예언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주인공의 삶인 것처럼.
각자의 삶에서 해체는 거대한 담론으로서가 아니라 삶이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일어나고, 그 방식은 예측불허다. 일견 엇비슷해 보이는 삶이라 할지라도 해체되는 방식은 얼마나 다양할까 생각해 본다. ‘산으로 간 배’가 만약 멘토 선생님들의 예술 작품이라면 그것은 해체라는 오래된 담론을 이끌어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들을지도 모르겠지만(내 좁은 식견으로는 진짜 모르겠다). 하지만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해체는 각자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내가 ‘산으로 간 배’라는 글자들을 영등포 철공소 낡은 간판체로 만들고 있을 때,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배가 산으로 갔다는 말이 러시아에서는 긍정적으로 쓰인다고.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랬다. 챗GPT한테 물어보니까 그런 말 안 쓴다고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불가능한 일도 일어난다니, 멋진 해석이다.
삶이 삶을 바라보는 모순 한가운데서,
혹은 곁다리에서, 혹은 멀찍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산으로 간 배’의 모든 사공들에게 어울리는 멋진 해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