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선물해주신 카세트player로 시작된 나의 음감 생활은 지난 40년간 바라본 한강의 풍경과
함께한다. 이제는 추억이 된 한강의 기억에서 1988년 영등포동 명화극장에서 처음 보았던 홍콩영화와 1989년
63빌딩 컨벤션 홀에서 처음 경험했던 라이브 콘서트는 유년 시절에 내가 처음 맛보았던 새로운 문화였다.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킨 이번 '문화가 문화를’ 기획은 근대에 일본문화의 유입으로 탄생한 신민요부터, 탈근대
에 미디어를 통해 유입된 미국 Pop문화의 영향으로 탄생한 K-pop의 원조까지, 한 시대를 대변했던 노래들을 통해 우리의 공시적 시간을 돌아보고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지점을 탐색하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영등포동 명화극장

도심에서 만난 자연들

대림동 & 영등포 전통시장

1935년 영등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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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리, 시간의 풍경
유년 시절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학부에서 음악을 전공한 내가 30년 동안 카세트테입과 LP, CD와 오디오 시스템을 거치는 음감 생활의 종착지까지 함께했던 LP가 있었습니다. 한 면의 재생이 끝날때에 맞춰 레코드판을 뒤집는 행 위가 조금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소리가 주는 행복감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Lp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죠. 지금은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어떤 음악이든 찾아 들을 수 있게 되서 소리가 주는 행복감도 초고속으로 짧아졌지만, 여전히 바쁜 일상에서 숨을 돌리게 해주는 것은 내게 음악이기에, 이번 '문화가 문화를' 작업은 근현대 100년을 하나의 소리풍경으로 구성해 K- 컬쳐라는 새로운 문화적 전환점을 마주한 지금의 '시간'을 좀 더 이해해 보려 합니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사 끝에서 JAZZ가 탄생했고, 한국의 전통음악 끝에서 민요가 탄생했습니다. 20세기 근대사에 등장한 신민요는 우리 전통민요에 LP와 같은 소리 매체를 통해 일본의 문화가 유입되면 탄생한 일종의 혼종적 소리이자 새로운 소리 문화입니다. 지금의 정동극장 자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원형공연장이 세워졌고, 티켓을 구매해 공연을 보는 새로운 소리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이전에는 풍물패와 풍물 소리꾼들이 시장이 열리는 황학동에서, 오간수문이 있는 동대문 밖까지, 청계천 일대에 장이 열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소리를 내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근대사에 녹음매체의 기술로 인한 문화의 변화뿐만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그 무렵, 경인 공업지역의 중심지였던 영등포역에서 노량진역까지 한강의 풍경을 노래했던 신민요 '노들강변‘(1934,박부용)이 탄생합니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우리의 소리 문화입니다. 1955년 영등포역에 시장이 형성된 후, 한반도의 산업화를 주도했던 탈근대의 풍경이 연상되는 '영등포의 밤’(1963,오기택)은 동명의 영화(1966,강민호)로도 상영됐습니다. 7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고 주요 교통수단이 기차에서 자동차로 변화하면서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애타는 실향민의 심정을 노래한 '세갈래 고속도로(1972,김상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지금 들어보면 노랫말의 표현이 동시대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민요에서 트로트로 이어진 대중가요는 70년대 컬러TV가 보급되면서 미국의 Pop 문화가 안방극장으로 유입되게 되면서 변화됩니다. 7-80년대 J-pop과 시티팝, 미국 Pop 문화 등의 영향으로 한국 가요에 변화가 시작되었던 이 무렵 라디오와 워크맨을 통해 들었던 수많은 팝송과 가요의 감성이 저의 사춘기 시절 유일한 문화적 통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등학교 때, 여의도 63빌딩에서 보았던 '이문세의 콘서트'는 첫 문화적 경험이였고, 이번 작업 과정에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80년대는 대학가요제와 강변 가요제(J에게_이선희,1984) 등, 오디션을 통해 데뷔한 젊은 가수들에 의해, 대중음악의 새로운 음악적인 노랫말과 표현이 밴드뮤직과 발라드와 같은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면서 우리말의 감성적 표현 양식이 드라마와 영화로 확장하게 됩니다. 귄선징악으로 일관된 헐리우드 영화와 Pop 음악의 범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적 양식이 형성되면서 다국적 영화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90년대에는 K-pop의 전신이 되는 레게와 힙합 뮤지션(하여가_서태지와 아이들,1993)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한국의 대중음악사에 가장 풍부한 음악적 발판이 프로듀서와 가수의 관계로 만들어집니다. 문화와 산업이 연계되는 방식이죠.
이렇게 대중가요의 노랫말과 음악 양식의 변화를 통해 우리 근현대 100년의 공시적 시간과 저의 기억과 경험을 교차해 한강의 소리풍경을 재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K - 컬쳐의 형성과 더불어 우리는 새로운 문화의 전환점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리 문화는 어디쯤 있나요?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한강의 소리, 시간의 풍경에 대한 이번 이야기를 마칩니다.
기획자 조은영 @dalnurilab
유년 시절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학부에서 음악을 전공한 내가 30년 동안 카세트테입과 LP, CD와 오디오 시스템을 거치는 음감 생활의 종착지까지 함께했던 LP가 있었습니다. 한 면의 재생이 끝날때에 맞춰 레코드판을 뒤집는 행 위가 조금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소리가 주는 행복감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Lp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죠. 지금은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어떤 음악이든 찾아 들을 수 있게 되서 소리가 주는 행복감도 초고속으로 짧아졌지만, 여전히 바쁜 일상에서 숨을 돌리게 해주는 것은 내게 음악이기에, 이번 '문화가 문화를' 작업은 근현대 100년을 하나의 소리풍경으로 구성해 K- 컬쳐라는 새로운 문화적 전환점을 마주한 지금의 '시간'을 좀 더 이해해 보려 합니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사 끝에서 JAZZ가 탄생했고, 한국의 전통음악 끝에서 민요가 탄생했습니다. 20세기 근대사에 등장한 신민요는 우리 전통민요에 LP와 같은 소리 매체를 통해 일본의 문화가 유입되면 탄생한 일종의 혼종적 소리이자 새로운 소리 문화입니다. 지금의 정동극장 자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원형공연장이 세워졌고, 티켓을 구매해 공연을 보는 새로운 소리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이전에는 풍물패와 풍물 소리꾼들이 시장이 열리는 황학동에서, 오간수문이 있는 동대문 밖까지, 청계천 일대에 장이 열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소리를 내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근대사에 녹음매체의 기술로 인한 문화의 변화뿐만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그 무렵, 경인 공업지역의 중심지였던 영등포역에서 노량진역까지 한강의 풍경을 노래했던 신민요 '노들강변‘(1934,박부용)이 탄생합니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우리의 소리 문화입니다. 1955년 영등포역에 시장이 형성된 후, 한반도의 산업화를 주도했던 탈근대의 풍경이 연상되는 '영등포의 밤’(1963,오기택)은 동명의 영화(1966,강민호)로도 상영됐습니다. 7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고 주요 교통수단이 기차에서 자동차로 변화하면서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애타는 실향민의 심정을 노래한 '세갈래 고속도로(1972,김상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지금 들어보면 노랫말의 표현이 동시대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민요에서 트로트로 이어진 대중가요는 70년대 컬러TV가 보급되면서 미국의 Pop 문화가 안방극장으로 유입되게 되면서 변화됩니다. 7-80년대 J-pop과 시티팝, 미국 Pop 문화 등의 영향으로 한국 가요에 변화가 시작되었던 이 무렵 라디오와 워크맨을 통해 들었던 수많은 팝송과 가요의 감성이 저의 사춘기 시절 유일한 문화적 통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등학교 때, 여의도 63빌딩에서 보았던 '이문세의 콘서트'는 첫 문화적 경험이였고, 이번 작업 과정에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80년대는 대학가요제와 강변 가요제(J에게_이선희,1984) 등, 오디션을 통해 데뷔한 젊은 가수들에 의해, 대중음악의 새로운 음악적인 노랫말과 표현이 밴드뮤직과 발라드와 같은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면서 우리말의 감성적 표현 양식이 드라마와 영화로 확장하게 됩니다. 귄선징악으로 일관된 헐리우드 영화와 Pop 음악의 범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적 양식이 형성되면서 다국적 영화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90년대에는 K-pop의 전신이 되는 레게와 힙합 뮤지션(하여가_서태지와 아이들,1993)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한국의 대중음악사에 가장 풍부한 음악적 발판이 프로듀서와 가수의 관계로 만들어집니다. 문화와 산업이 연계되는 방식이죠.
이렇게 대중가요의 노랫말과 음악 양식의 변화를 통해 우리 근현대 100년의 공시적 시간과 저의 기억과 경험을 교차해 한강의 소리풍경을 재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K - 컬쳐의 형성과 더불어 우리는 새로운 문화의 전환점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리 문화는 어디쯤 있나요?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한강의 소리, 시간의 풍경에 대한 이번 이야기를 마칩니다.
기획자 조은영 @dalnurilab